주관성과 집단

by 영진

예술은 주체의 모사물이 아니다. 또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넘어서야 한다는 상투어에 대한 헤겔의 비판 역시 타당하다. 예술가가 작품에서 객관화한 것의 빈 껍질인 듯이 자신의 작품보다 못한 경우도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예술 작품도 주체가 자신에 근거해 실현하는 것 말고 달리 성공할 수 없다는 점도 사실이다. 주체는 예술의 수단인 한에서 자신이 처한 고립을 뛰어넘을 수 없다. 이러한 고립은 어떤 신조나 우연한 의식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정신적 산물인 예술은 그 객관적 본질구성상 주체에 의한 매개를 피할 수 없다. 예술 작품에 주체가 관여하는 몫은 그 자체로 객관성의 일부다. 예술에 불가피한 미메시스적 계기는 그 실체에 비춰 볼 때 물론 보편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개별 주체들의 해소될 수 없는 개인 성벽적 요소를 통해서 말고 달리 이루어질 수 없다. 예술 자체가 가장 본질적인 면에서 일종의 반응이므로 이미 표현과 분리될 수 없으며, 표현은 또한 주체 없이 불가능하다. 특히 정치적으로 반성하는 개별 주체들은 논증적으로 인식된 보편으로 넘어감으로써 자신의 고립 상태나 무기력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만, 이 이행은 미적 측면에서 타율성에 투항하는 것이다. 예술가의 업무는 자신의 우연성을 벗어나야 할 테지만, 이를 위해 예술가는 논증적으로 사유하는 사람과 달리 객관적으로 설정된 한계와 자신을 넘어설 수 없다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언젠가 사회의 원자론적 구조가 혹시 변한다면, 예술은 특수한 것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자체의 사회적 이념을 사회적 보편에 희생시킬 필요가 없을 것이다. 즉 특수와(105) 보편이 괴리되는 한 자유는 없다. 오히려 자유는 미적 측면에서 오늘날 예술가들이 따를 수밖에 없는 개인 성벽적 강압들에서만 나타나는 권리를 특수에 제공할 것이다. 엄청난 집단적 압력을 상대로 주체가 예술을 관통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사람도 결코 주관주의적 베일 속에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미적 독자존재 속에는 집단적으로 진보적인 것, 속박에서 벗어난 것이 감추어져 있다. 모든 개인 성벽은 그것의 미메시스적이고 개인에 앞서는 계기로 인해,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집단적 힘에서 생명을 얻는다. 주체는 비록 고립되어 있더라도 비판적 반성을 통해 그러한 집단적 힘이 퇴행하지 못하게 감시한다. 미학에 대한 사회적 사유는 생산력 개념을 소홀히 하곤 한다. 그러나 생산력은 테크놀로지적인 과정의 깊숙한 곳에 이르기까지 주체다. 즉 주체가 테크놀로지로 굳어버린 것이다. 기술적으로 자립하려는 듯이 주체를 배제하는 생산은 주체를 통해 수정되어야만 한다.(106)



ㅣ출처

미학 이론

테오도어 W. 아도르노 지음, 홍승용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5.

원제 : Asthetische Theorie




아도르노 [미학이론] 읽기



매거진의 이전글진리내용과 작품의 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