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읽고 좋은 말을 나누려고 한다. 좋은 말을 애써 지어내려고도 한다. 어휘와 표현을 확장해 보려는 생각에서다.
말이 씨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좋은 말은 좋은 생각의 씨가 되고 좋은 생각은 좋은 말과 행동의 씨가 될 것이라고, 나쁜 말은 그 반대일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좋은 말이 씨가 되어 현실이 변하기를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현실적 조건이 그렇지 못한데 말만 좋게 한다고 현실이 달라질 리 없다. 그래도 그렇게 좋게 말함으로써 그럴 여지를 만드는 것이다.
‘현실’은 고정불변의 무엇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은 것이기에 말이다. 좋은 말은 나의 소망이 담긴 말인 셈이다. 현실에 근거한 소망 말이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인사말인 것만은 아닌 것이다.
‘비판’이 듣기 좋은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쁜 말은 아니다. 비판이 입에 쓴 약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기왕이면 비판도 듣기 좋게 말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자칫 비판이 비난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상대가 수용할 때 제대로 된 비판일 테니 말이다.
나는 ‘비판’은 ‘자기반성’과 동의어라고 여긴다. 비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은 그러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자신은 그러하지 않으려면 ‘자기반성’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비판받을 일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비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반성이 필요한 사람들은 대체로 권력을 가진 자들이지만 자기반성을 게을리하는 이들이 그들이기도 하다. 그들에 대한 비판은 그들에 동조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도 각자의 자기반성은 중요해진다.
좋은 말, 감사의 말, 응원의 말을 애용하는 것은 나의 자기반성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런 말은 나에게 하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좋은 말 들을 일, 감사받을 일, 응원받을 일을 하자는 의미도 담겨 있는 것이다. 좋은 말이 좋은 씨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2023. 11. 21.
<대문사진> 독일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광장 Holocost Memorial
<유럽의 베를린>이라는 매거진을 발행하고는 처음 올리는 글이라서 사족을 붙인다. ‘[브런치북] 7권을 준비하며’라는 글에서 독일 베를린에서의 5개월과 쿠바에서의 25일에 대한 글은 여행기가 아닌 다른 형식이 필요할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해를 넘기더라도 드문 드문 두 장소와 관련한 글들을 다양한 형식으로 써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