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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Jul 26. 2023

착각하지 마

영화 <인스팅트 Instinct> 읽기

1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역사는 동물보다 얼마나 더 나은 것일까. 동물보다, 다른 인간보다 우월해지려는 욕망은 전쟁을 일으키고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고 지배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을 짐승처럼 부리다 팔거나 내다 버리는 노예제 하나 없애지 못하면서 인간이 동물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작 지능적으로 인간을 지배할 줄 아는 능력을 개발시킨 것이 인간이 동물보다 뛰어나다는 증거일까. 그런 지능개발이 동물적 본능보다 뛰어나다는 근거는 무엇일까. 누가 인간에게 인간의 노예화라는 야만을 허락한 것일까.      


신의 이름을 빌릴 수 있을지언정 부처가 예수가 그런 짓을 허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성보다는 본능에 더 가까워 보이는 동물의 세계. 그 동물적 본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과학적이고 이성적이라는 인간은 야만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 존재인가.           



2     


저명한 인류학자이자 동물학자인 파월박사는 원숭이를 지키기 위해 인간을 살해하는 정신이상의 살인자로 감옥에 수감된다. 하지만 파월박사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기는커녕 자신을 가두는 감옥의 규율과 통제를 비웃으며 죄수들과 자신의 정신이상을 치료하겠다던 콜터 박사의 지지를 받으며 감옥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런데 규율과 통제가 지배하는 사회의 일부인 감옥으로 부터 벗어난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 아니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착각은 자유’라는 말은 착각해서는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 사태를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그 사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경고하는 말일 것이다. 파월박사는 콜터 박사에게 착각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타인을 사회를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타인으로부터 사회로부터 통제당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 사회에 태어나고 자라면서 그 사회의 규율을 따르는 것은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다. 하지만 한 사회의 정해진 규율이라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과 같은 것은 아니다. 규율은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약속인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 약속으로서 그 규율을 잘 지키느냐 마느냐를 떠나 규율 자체를 문제 삼을 수도 있다. 그 규율이 인간들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하고 유용한 장치가 아니라 권력의 이름으로 인간들을 가두고 통제하는 것이라면 그 규율의 내용을 문제 삼아 규율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파월 박사의 말대로 그 규율이 인간을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통제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실재하는 규율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사회구성원들이 그 규율을 바꾸어 나가는 만큼이다. 그런 점에서 감옥을 비웃으며 감옥을 벗어나 파월박사가 향한 곳이 어디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감옥과 같은 사회를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착각일 것이기 때문이다.           



3     


파월 박사가 감옥과 같은 사회를 벗어나 사라진 곳은 자연일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인간들의 삶의 기반인 자연을 돌아보고 돌보는 일은 소중한 일이다. 흙과 대지, 물과 바람, 그 속에서 함께 살아 숨 쉬는 동식물의 세계, 인간이 만물의 영장임을 자처할 수 있으려면 자연의 일부로 그들 자연을 돌보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파월박사의 행위는 자연으로부터 태어난 인간의 본능적 발현이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사회의 규율 속에서 그는 범죄자이며 탈옥수이다. 파월박사가 자신의 범죄가 정당한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려면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를 설명하고 사회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감옥 같은 사회로부터 함께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4     


영화가 보여주는 공간은 대부분 감옥과 원시림이다. 감옥에서 원시림으로 원시림에서 감옥으로 두 공간의 자연스러운 화면이동은 통제로부터 자유로, 자유로부터 통제를 느끼게 해 준다. 또한 감옥과 원시림이 별개의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감옥도 원시림도 사회의 일부이지 사회의 바깥일 수 없다. 그것은 언제든지 원시림의 자유로움이 감옥과 같은 통제의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들의 사회가 그와 같은 통제와 자유라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고정될 수는 없다. 영화 속에서 그 둘을 대신해 줄 덜 통제된 좀 더 자유로운 다른 공간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두 공간의 간극을 좁혀 줄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인간들은 존재한다. 콜터 박사와 죄수들이다.      


정신병적 범죄로 수감된 비 정상인들이 서로를 돕는 행위는 인간의 본능과 멀지 않다. 오히려 비 정상인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간수들의 지나친 행동들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콜터 박사가 감옥의 규율을 바꾸려 할 때 죄수들과 간수들의 대비되는 태도는 간수들이 옳다고 믿고 있는 규율이 틀린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5     


이성은 스스로 만든 규율을 문제 삼지 않을 때 오히려 그 규율 속에 갇히게 된다. 스스로 만든 논리에, 규율에 갇히는 것이야말로 인간들이 자신을 가두는 감옥일 수 있는 것이다. 즉, 한 사회가 감옥과 같다 하더라도 그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그 사회를 문제 삼고 그들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사회에 대해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사회는 다른 사회로의 변화 가능성에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성적 판단이 전부일 수는 없다. 내가 옳다고 알고 있던 것이 틀린 것일 수도 있고 인간들의 이성만이 아니라 감성적이고 본능적인 행위들에 의해 사회는 변하기도 하는 것이다.      

위험에 처한 파월 박사를 지키려다 죽어간 고릴라의 눈빛은 현대인들에게 경고를 하는 듯하다.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그런데 착각이라는 말을 상상, 꿈 등으로 바꿔 불러도 좋다면 가끔은 착각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통제하고 누군가로부터 통제당할 수 있다는 착각이 아니라 누군가를 통제하려들지 않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자연스러운 세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착각으로서의 상상이나 꿈은 필요한 것이다. 물론 파월박사의 말처럼 자유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우리가 스스로 만든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2016.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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