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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Jan 20. 2024

탈성장의 의미

‘탈성장’이라는 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사이토 고헤이 작가의 책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때문이다.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는 ‘지속 불가능한 자본주의’에 대한 ‘설득력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문제의식’, ‘나름의 해결 방안’까지 제시한다는 점에서 빼어난 저서라고 여긴다.     




책에서 작가가 말하는 ‘탈성장’의 의미는 ‘성장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성장의 속도를 늦추자’는 것이다. 그 말은 ‘자연의 신진대사에 맞게 합리적으로 생산하자’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오직 이윤의 무한 증식을 위해 자연자원을 파괴하면서 무분별하게 생산함으로써 ‘성장’이 지속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성장은 말할 것도 없고, 자연의 파괴에 따른 환경위기, 식량위기로 인해 인류의 존속마저 위협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해서, 성장을 위한 생산력 증대, 과학기술의 발전을 멈추자는 것이 아니라 자연 파괴를 최소화하면서 기계적 자동화에 따른 인류의 위기(실업, 양극화, 관계성 파괴)를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금욕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생산과 소비를 통해서 무분별한 생산과 소비를 억제하자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생산을 위한 자연 파괴, 소비를 위한 관계 파괴를 억제하자는 것이다.     




사이토 고헤이는 성장의 ‘속도를 늦추자’고 표현한다. 성장을 멈출 수는 없지만, 속도를 늦춤으로써 인류 파멸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류의 파멸을 늦추자며 ‘탈성장’을 주장하는 그에게 동의하는 이들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 원인 역시 ‘자본주의’에 있다.      


자본주의는 과학기술의 발전, 생산력 증대, 무한 이윤 증식에 의해서 유지되기 때문이다. 생산력 증대를 늦춘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와 충돌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내재한 작동원리에 따라 ‘성장을 늦출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성장을 지속하면서도 자본주의가 야기하는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이토 고헤이의 주장을 따르겠다면 ‘자본주의 생산방식’에 제동을 걸만한 ‘사람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생산방식’을 자연의 신진대사에 따르는 합리적인 생산방식으로 대체할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지구상의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자본주의 생산방식을 따르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와 다른 생산방식을 지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다른 생산방식을 추구하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자본주의 생산방식과 다른 생산방식을 위해서는 ‘생산수단’의 소유 방식이 관건이다. 우리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생산물을 생산하는 ‘생산수단’을 거대 자본의 ‘사적 소유’에서 ‘국유화’, 혹은 ‘사회화’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다른 생산방식을 바라는 사람들이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통해서 계획적이고 합리적인 경제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는 입장이 있다.      


사이토 고헤이를 비롯한 또 다른 사람들은 ‘국유화’가 아니라 ‘사회화’, ‘사회적 공유’, ‘커먼 common’을 주장한다. 국유화는 소수 사람들의 또 다른 ‘사유화’를 의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해서, 사이토 고헤이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공유’의 확대, ‘노동자협동조합’을 통하는 생산방식을 주장한다. 그와 같은 생산방식을 통해서 그는 ‘탈성장 코뮤니즘’, ‘탈성장 사회’로 나아가기를 주장한다.     


사이토 고헤이는 ‘탈성장 코뮤니즘’의 구상을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사용가치 경제로 전환’, ‘노동 시간 단축’, ‘획일적인 분업 폐지’, ‘생산 과정 민주화’, ‘필수 노동 중시’”가 그것이다.     




필자는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사회화, 그 두 가지 방식을 분리할 이유가 없다고 여기고 있다. 결국 ‘생산수단’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다룰 수 있는가의 문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을 거대 자본이 사적으로 소유하는 자본독재 국가가 아니라 ‘생산수단’의 민주적인 국유화가 가능한 ‘민주국가’,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가 가능한 ‘민주사회’를 이루는 것이 관건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국가와 사회가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평등을 보장하는 국가와 사회여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민주적이고 평등한 국가와 사회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적인 국가와 사회를 민주화하는 과정에서 ‘생산수단’의 민주적인 국유화와 사회화를 지속적으로 이루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관심을 가지고 ‘생산 수단’의 국유화, 사회화를 이루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사회화, 어느 쪽이 우선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국유화와 사회화를 이루어 갈 만한 민주적인 국가, 민주적인 사회를 이루는 문제인 것이다.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의 민주국가와 민주사회의 형성, 그것만이 지속 불가능한 자본주의를 지속 가능하게 하면서, 더 나아가 인류의 생명을 연장하는 길일 것이라고 여긴다.       


‘민주국가와 민주사회의 형성’은 각국의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함께 이루어가는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민주국가와 민주사회’를 이루는 만큼, 그만큼 풍요로운 인류의 지속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고 여긴다.          



2024.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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