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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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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Apr 24. 2024

다시 사유

ㅣ사유는 늘 잘못된 것일 수 있다     


대상에 대한 사유는 늘 잘못된 것일 수 있습니다. 사유를 통해서 풍부한 대상의 일부를 파악하여 언어로 개념화한 것을 마치 대상 전체와 동일한 것처럼 여길 경우, 더 나아가 대상을 고정불변의 영원한 것으로, 대상에 대한 개념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경우,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해서, 대상에 대한 사유는 늘 ‘결여와 오류’라는 문 앞에 활짝 열려 있다는 사실, 대상에 대한 사유는 늘 부분적이고 상대적으로만 옳을 수 있다는 사실, 사유의 대상에는 사유하는 자신도 포함된다는, 즉, 대상에 대한 자신의 사유가 대상에 적합한 것인지도 사유해야 한다는 사실, 대상은 무궁무진하며 가변적이기 때문에 완전하고 완결된 사유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ㅣ상대적으로는 절대적으로 옳을 수 있다     


사유는 대상을 알아갈 뿐이라는 점에서도, 변화하는 대상을 따라갈 뿐이라는 점에서도, 대상에 대한 사유가 옳은 것인지를 묻는 진리나 진실에 대한 논란은 늘 존재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특히,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힌 경우는 더욱 그렇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대상에 대한 자신의 사유가 절대적이고 보편타당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의문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겠습니다. 그처럼 모두가 옳을 수 있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는 절대적으로 옳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모두가 절대적이고 완전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진리는 말할 것도 없고 안다는 것 자체가 부정되기도 합니다. 진리도 아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부정하지 않으려면 아는 것도, 진리도 부분적이고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ㅣ부단히 알아가고 보편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인류의 진화 과정이다     


대상에 대해서 알아낸 만큼은 아는 것이고, 그 만큼에 근거해서 진리나 진실에 대해서 사유하면 될 것인데, 자신이 아는 것만이 아는 것이고 자신만이 진리라고 주장할 경우 ‘다시’ 사유할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유는 완전할 수 없지만 완전한 앎을, 절대적일 수 없지만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부단히 알아가고 보편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고정되고 완결될 수 없는 인류의 진화 과정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지의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인류가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대상을 부단히 알아가기 위해서, 보편타당한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 사유에 늘 존재하는 ‘결여와 오류’를 수정하고 보완하기 위해서, ‘다시’ 사유하려는 자세는 중요해 보입니다. 관찰하고 실험하는 과학적인 사유, ‘성찰’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자세입니다.               



ㅣ대상과 사유는 상호작용하며 함께 변해간다     


사유도 대상의 일부라는 점에서 사유를 통해 대상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사유와 대상은 별개일 수 없습니다. 서로 상호작용하며 함께 변해간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대상의 변화를 사유하면서 사유를 대상에 맞추기도 하지만 변화를 예측함으로써 대상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사유가 대상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에도, 대상과 대상이 변화하는 역사적인 과정, 즉, 시간의 흐름 속에서 대상과 사유의 상호작용에 의해 생성, 변화, 발전하며 형성된 사회적 조건에 대한 사유에 근거할 때 인류에게 이로운 대상과 사유를 형성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2024. 4. 24.



<사진들> 독일 베를린에서 영진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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