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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Oct 12. 2023

즐거운 활동

행복한 복수

          

우리들은 이미 누구나 예술가이며,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 근거는 뛰어난 두뇌와 오감, 손, 발이라는 훌륭한 창작 수단을 지닌 우리의 몸, 그리고 그 훌륭한 수단을 이용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광대한 자연을 대상으로 행하는 노동이다. 우리는 주어진 자연환경을 이용해서 집도 짓고 음식도 만들고 옷도 만들고 그림도 그리고 작곡도 하고 소설도 쓰고 영화도 만든다.     


즉, 어떤 대상물에 나의 노동을 가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예술 활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우리의 모든 행위는 예술 활동이며, 그 때문에, 그 결과물들에 대해서도 멋지다, 아름답다, 추하다 등등의 가치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예술 활동을 하는 인간들에 대해서도 그 활동의 결과에 따라 멋지다, 훌륭하다, 추하다 등등의 평가가 주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노동을 통해 삶을 영위하는 인간이면서 동시에 자기가 의도한 대로 노동의 산물을 만들어내는 예술가인 것이다.     


그래서, 예술 활동이라는 것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다른 특별한 행위라는 생각을 조금만 바꾼다면, 예술 활동을 위해 굳이 시간을 따로 내거나, 경제적인 비용을 따로 지불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는 매일같이 자신의 능력을 실현하는 직장에서뿐만 아니라, 일과 후에도 자신의 예술적인 능력을 뽐내고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일상적인 예술 활동이 만들어낸 예술품들을 안주 삼아,  나은 예술 활동과 예술품을 위해 찻잔 혹은 술잔을 기울이며,  어떤 철학자들이나 예술가들 못지않은 현실적인 고민들을 나누며,  어떤 정치인들 못지않은 훌륭한 정치적인 발언들을 하며,  어떤 영화감독 못지않은 영화에 대한 멋진 생각들을 쏟아내기도하고,  어떤 소설가 못지않은 상상력으로 서로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하고,  어떤 가수들 못지않은 노래실력을 뽐내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는데 시간과 경제적인 비용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예술품들의 수동적인 감상자로서만 아니라, 예술가로서 우리의 태도를 조금만 능동적으로 바꾼다면, 살면서 겪는 고통들을 멋진 예술품을 만들어내는 예술 활동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영화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소설이든, 그 결과물의 질에 관계없이, 그 예술 활동 자체만으로도 또한 예술가로서의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고통을 넘어 행복한 복수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고통을 여러 예술 매체를 통해 승화시킬 수 있을 정도의 행복한 예술가는 될 수 있을 것이다. '될 수 있음'에 대한 근거는 우리들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금껏,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만들어 온 것처럼 말이다.(2006. 7. 6.)     

 



고통스럽지 않은, 복수와 같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 사회 구성원들의 자기 성찰과 명상을 통한 마음 수양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삶의 고통을 유발하는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자본독점 권력이나 권위주의와 같은 구조적인 요인들을 일거에 해소할 수는 없는 것이고 해소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통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예술 활동을 통해 ‘민주적’인 성격의 미감과 미의식을 기르는 것은 중요해 보인다. 그와 같은 활동이 고통을 누그러뜨리면서 해소해 나갈 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를 민주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자기 수양과 예술 활동과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법제도 개선은 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어느 하나만으로 삶의 고통이 덜한 사회를 넘어 민주적인 사회를 이루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회 구성원들이 그 모두를 중요히 여기며 자신과 사회 구조를 변화시켜 나가려 할 때 민주적이어서 평안한 사회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이는 것이다.   


박찬욱 영화감독이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이 분노를 승화시키기 위해서였다는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가 복수 3부작이라고 알려진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 ‘올드보이’다. 위 글은 그 인터뷰를 듣고 쓴 글이고 제목을 ‘행복한 복수’라고 붙인 것이다.     


2006년에 쓴 글이니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그 내용에는 여전히 동의한다. 하지만, 글의 제목을 ‘즐거운 활동’으로 바꾸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만큼 자기 성찰과 예술 활동을 즐기는 사회구성원들은 늘어났다고 여기지만 사회 구조는 얼마나 민주적으로 변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와 같은 ‘즐거운 활동’이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사회 구조를 민주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성격의 활동으로 변해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예술 활동이 삶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삶의 동력으로서 ‘즐거운 활동’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2023.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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