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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May 05. 2024

관리되는 사회라는 ‘관념’

ㅣ관리되는 사회


아도르노는 자신이 살았던 1960년대 서구 사회를 총체적으로 관리되는 사회로 규정합니다. 관리되는 사회에는 서독 및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사회뿐만 아니라 동독 및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사회 모두 포함됩니다.      


아도르노가 관리되는 사회라고 규정하는 근거에는 동일성 사유에 따른 동일성 원리가 있습니다. 즉, 자본독점, 권위주의, 관료주의에 반反하는 것들은 쓸모없는 것, 틀린 것, 불온한 것으로 간주되어 배제와 억압의 대상으로 관리되는 것입니다.          



ㅣ동일성 속의 차이, 차이 속의 동일성


그런 이유에서인지 아도르노는 동일성 사유를 따를 때 늘 남겨져 존재할 수밖에 없는 ‘비동일자’를 더 중요하게 여기거나, 동일자보다 비동일자를 더 본질적인 것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처럼 아도르노의 변증법적 사유는 대상을 ‘동일성’이나 ‘비동일성’의 일면이 아니라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동일성’으로 파악하려고 하거나, ‘동일성 속의 차이, 차이 속의 동일성’을 파악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대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사유의 운동이기도 합니다.       


또한, 아도르노의 변증법적 사유는 관리되는 사회를 유지하는 근거가 되는 동일성 사유나 도구적 이성에 대해 비판합니다.      


하나의 ‘제일원리’로부터 전체를 파악하려 하거나, 대상의 변화를 보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실증주의’적으로 파악하려 하거나, 대상들의 관계를 보려 하지 않고 각각의 위치만 파악하는 ‘위상학적 사유’, ‘사회적 통념’이나 ‘기존의 틀’을 무반성적으로 따르는 ‘고정관념’, 자연과 사람을 도구화하는 도구적 사유 등이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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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사태 자체에 다가갈 자유


그처럼 아도르노의 변증법적 사유는 동일성 사유의 폭력을 넘어서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변화하는 대상을 부단히 따라잡으려는 사유, 그 사유에 대해서도 반성하는 사유, 아도르노의 촘촘한 ‘미시론적’ 사유는 무엇보다 ‘사태 자체’에 충실 하려는 사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도르노는 ‘사태 자체에 다가갈 자유’를 강조합니다. ‘동일성 사유’의 틀에 갇히지 않을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총체적으로 관리되는 사회 내에서 사태 자체에 다가갈 자유는 어디까지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 것인지 물음을 갖게 합니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을 ‘관리되는 사회’라고 규정한 아도르노의 변증법적 사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도르노의 변증법적 사유에 따르면 ‘관리되는 사회’라는 ‘동일성 사유’는 부분적인 사유일 뿐입니다. 해서, 현대 사회를 ‘관리되는 사회’로만 파악한다면 ‘동일성 사유’에 빠져있는 변증법적이지 못한 사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변증법적인 사유인 한, ‘관리되는 사회’의 비동일자라고 할 수 있는 ‘관리되지 않는 사회’를 동시적으로 사유할 수 밖에 없으며, ‘관리되는 사회’라는 사회의 성격도 고정불변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실천적 작용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ㅣ자유는 그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아도르노가 ‘관리되는 사회’에 대한 ‘내재 비판’을 통해 관리되는 사회의 한계를 드러내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리되는 사회가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관리되는 사회를 유지하려는 지배관계를 변혁할 실천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아도르노가 사태 자체에 다가갈 자유를 강조하지만 사태 자체에 다가가려는 자유가 발현되는 것에는 많은 제약이 따릅니다. 자유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유의 자유도 마찬가지고 사태 자체를 조금이나마 자유롭게 변혁하기 위해서도 크고 작은 변혁적 실천에서부터 생사를 건 투쟁에까지 이르기도 합니다.     


아도르노에게 ‘변증법적 사유를 넘어선 변혁적 실천’으로 무엇을 했는지 묻곤 합니다. 엘리트라는 물적 토대(유복한 가정환경, 대학 교수)가 ‘지배하고’, ‘관리하는’ 기득권 쪽에 가 있지 않았나 비판받기도 하고, 운동가가 아니라 이론가 아닌가, ‘아우슈비츠라는 충격적 경험’이 변혁적 실천에 대해 체념하게 만들지 않았나 이해받기도 합니다.      



ㅣ'자유의지'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사태 자체’에는 사유 주체들의 사유와 행위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어떤 사태 자체, 어떤 사회를 살아가고 싶은지를 결정할 ‘자유의지’, 사태 자체에 다가갈 자유를 넘어 사태 자체를 변혁할 ‘자유의지’, 자신의 의지에 따르는 그 ‘자유의지’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2024. 5. 5.


     


<사진들> 독일 베를린에서 영진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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