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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May 13. 2024

살려주는

미美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미에 대한 의식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저의 미의식은 '생명 긍정'입니다. 생명을 '살려주는' 것들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체르니세프스키의 말을 따온 것이기도 합니다. 이때 생명(life)은 생명체일 수도 있고, 삶(인생)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생명체 혹은 삶을 긍정해주고 살려주는 것들이 아름다워 보인다는 것입니다. 자연 풍경, 아이의 해맑은 미소는 아름다워 보입니다. 이러한 아름다움에는 가치판단이 따르지 않습니다. 거의 본능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해서 ‘원초미’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선善이나 참眞과 같은 가치판단이 개입된 인간의 행위에 대한 것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좀 복잡합니다. 사람마다 선과 진에 대한 기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관계(이권)에 따라 누구에게 선이나 참이, 누구에게는 악이나 거짓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의 기준으로서 '생명 긍정'을 들 수 있습니다. 생명이나 삶을 '살려주는' 것들은 아름답다고 말입니다. '선과 참'의 이름으로, '최선과 열정'을 다해, 자본과 권력을 위해서 생명체와 삶을 부정하는 행위들은 전혀 아름다워보이지 않습니다.     


한편으로,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것은 생명체를 부정하는 것이지만, 그 행위가 어떤 생명체와 삶을 살려주는 것이라면 아름다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와 같은 '미담美談'이나 '아름다운 저항'과 같은 미적 행위에 대한 판단은 복합적인 기준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복합미’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2024. 5. 13.

 


<대문사진> '윤상원' 생가. 영진 찍음.



07화 여전히 아름다운지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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