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여행지에서처럼 멕시코시티에서도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았고 프리다 칼로가 살았던 집을 방문했다. 멕시코시티에서는 뜻하지 않은 만남들이 많았다. 숙소였던 펜션 아미고가 그랬고, 인류학 박물관이 그랬고, 코요아칸이 그랬다.
코요아칸에는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만 아니라 러시아의 이론가 레온 트로츠키가 망명 중에 살았던 흔적이 보존되어 있었다. 뜻밖의 만남이었다.
“이론의, 이론가의 운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던 트로츠키. 권력으로부터 총 맞을지언정 현실에 대해 자신의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 그것이 이론의, 이론가의 숙명일까?”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이론가 트로츠키를 만났던 날 나에게 던졌던 물음이다. 인류 역사상 어느 시대, 어느 체제에서나 권력에 의해 탄압 받거나 추방 당하거나 죽임을 당한 이론은 수도 없이 많았다.
이론은, 과학은 자신의 유불리, 이익에 앞서 ‘사태 자체’에 충실한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론가도 인간인지라 자신의 이익과 권력 앞에서 '사태 자체'에 소홀하거나 외면하기도 한다.
한데, 그처럼 진리와 양심을 저버리는 순간 자신의 존재 근거를 상실하게 되기에 그런 이론은, 과학은 더 이상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양 생명력을 잃게 된다. 해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거나, 권력을 피해 망명을 하거나, 이론이기를 그만두는 것일 게다.
그러니까, '권력이냐 과학이냐'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과학을 한다면 현실의 진리, 양심의 존엄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 그와 같은 본연의 과학을 하지 못한다면 과학을 그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론의 숙명일 것이다.
2024.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