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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정당

by 영진


『책임정당』의 저자들은 「왜 두 개의 정당으로도 충분한가?」라는 글에서 “승자가 독식하고 패자는 모든 것을 놓치는 정치”인 양당 체제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여러 이유들 중에는 ‘불확실성’과 ‘지지층’이 있다. “두 개의 정당이 집권을 열망하며, 어느 한 당이 집권에 실패하면 다른 당이 성공한다는 것을 서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에 다당제에서는 “규모가 큰 정당도 자기 당 혼자서는 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즉, 선거 과정이나 선거 승리 이후에도 ‘연합’에 기반 해야 하기 때문에 정강 정책부터 정당 운영이나 정부 구성에서 “다당제에서는 상황이 더 불분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양당제에서는 “협소한 유권자층에 호소하는 일은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두 정당은 “핵심 지지층의 이익만 챙기는 일을 자제하고 (…) 자신과 핵심 지지층이 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인민 대다수가 원하는 것도 생각해야”하는 반면에 다당제에서는 정당들이 핵심 지지층 이외에 다른 누구에게 지지를 호소해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에 일단 핵심 지지층으로부터 최대한 지지를 얻어내야”하며, 그래서, “정당이 난립할수록 각 당의 정강 정책은 더 경직되고 배타적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들은 2015년 그리스의 중도 정당들이 바로 그런 일을 겪었는데, 급진 좌파 연합 시리자SYRIZA도 그런 경우라고 주장한다. 낸시 로젠블룸을 인용하여 그들은 “당파성이 공동의 과제를 추진하는 가운데 다른 당과도 일체감을 가지도록 확장될 수 있으며, 그것이 건강한 민주적 경쟁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정당들은 건전한 당파성을 발달시키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책임정당』의 저자들은 “정책으로 경쟁하는 일이야말로 건강한 민주주의의 생명소”이며 이를 위해서는 “크고 강한 두 개의 정당이 가장 좋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크고 강하다’는 의미는 저자들이 주장하듯 “더 나은 공공 정책을 위해 책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끄는”, “광범위한 유권자 집단의 장기적 이익을 위한 일단의 정책을 약속할 수 있는”과 같은 의미로 이해된다.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현대 민주정치를 돌아본 후 『책임정당』의 저자들은 “스웨덴처럼 강력한 정당과 탄탄한 선거 연합을 갖춘 나라들은 현재까지 제일 잘해 나가고 있다”고 쓰고 있다.




장석준은 “정당 내 정치와 정당 간 정치는 그 역학이 전혀 다르다”면서, “당 내 정치에서는 정당 엘리트나 다수파의 입장에 따라 노선이나 정책이 정해질 가능성이 높으며, 결국 대중은 양대 정당에 의해 이렇게 걸러진 두 개 정도의 선택지 중 하나만을 택해야 하게 된다.”


그래서, “양당 구도를 배경으로 한 연합정당이 다당 구도를 바탕에 둔 연합정치보다 '경제적'이거나 '안정적'이라는 주장의 이면은 실은 유권자가 직접 결정권을 행사하는 영역을 적당히, 아니 대폭 줄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장석준은 “이제 우리는 양당 구도의 연합정당과, 다당 구도의 연합정치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덴마크의 사뭇 극단적인 다당 구도까지 그대로 따를 일은 아니겠으나, 이런 다당 구도를 통해 미세한 노선-정책 차이에 대해서까지 대중의 결정권이 상당히 실질적으로 행사되게 한다는 점은 우리가 더욱더 주목해야 할 바”라고 주장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지금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놓치고 있는 민주주의의 어떤 핵심 지점은 아닐까”라고 묻는다.




한국은 커다란 두 개의 양당 체제임에도 『책임정당』 저자들이 희망하는 ‘정책 경쟁, 공공 정책에 대한 책임성, 광범위한 유권자의 이익을 위한 정책 약속 실현’과 같은 ‘책임정당’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히려 ‘정체성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두 거대정당이 지배하는’(하승수), ‘별 차이 없는 쌍둥이 정당들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미국 정치를 닮아’(타리크 알리)가는, ‘정책도, 책임도, 약속도 없는’, ‘돈과 권력의 공생이 극단적인’, “미국식 변형”, “크지만 약한 정당”정치가 한국 민주주의의 오늘날의 상태라는 것이다.


그런 상태가 선거제도나 정당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것일 테다. 그런 관심은 노동자정치와 좌파-당-운동의 관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심화하는 가운데 다양하고 복잡하게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여러 좌파정당들의 연합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한다면 여러 좌파당들이 연대의 손을 놓지 않으면서도 ‘분열’을 넘어 ‘분리와 연결’의 ‘상호작용’을 통한 ‘연합정당’ 정치운동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껍데기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를 구하면서 ‘진정한 민주주의’로 가기 위한 관건은 ‘거대 양당이 지배하는 대의제 아래에서 ‘유권자의 결정권’이 어느 정도까지 행사될 수 있는가’와 ‘시리자 및 포데모스가 남긴 과제이기도 한 “강한 좌파 연합 구축”을 어떻게 해 나갈 수 있는가’일 것이다.


한국사회에도 특수성이 있듯이 각 사회마다 그 사회가 처한 사정이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양당제, 다당제, 연합정치에 대한 논의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 보다 중요해 보이는 사실은 ‘유권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민중을 대변하는 정당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와 같은 정당을 ‘노동자민중들이 노동자정치와 좌파-당-운동을 통해서 집권을 목표로 이뤄가야 한다는 것’일 테다.



2023. 2. 10.



-F. 매컬·R. 블루스·I. 샤피로:『책임정당』, 노시내 옮김, 후마니타스 2022.

-장석준: 「덴마크 총선을 통해 양당 구도의 한국 정치를 돌아본다」, 『프레시안』, 202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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