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민주주의 내에서 직접민주주의를 확장하고 강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당면한 문제로 보인다. 그런데 직접민주주의의 확장과 강화가 대의민주주의의 문제였던 모든 구성원들의 의사를 반영하고 권리를 보장해 줄 것인가라는 물음은 다시 의회를 향할 수밖에 없다.
대의민주주의 내에서 모든 법과 제도는 의회를 통해야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듯 보이는 ‘국민동의청원’도 ‘애써 탄원하고 청원해봤자 의회가 외면하면 그뿐’이라는 것이다.*
수년 전 ‘촛불항쟁’ 혹은 ‘촛불혁명’ 이후의 평가들도 ‘대의민주주의’의 문제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대의 권력에 대한 시민주권의 우위를 총체적으로 확인했고 모든 혁명은 일반시민이 권력의 주체로 눈뜨면서 시작하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이미 시민혁명은 시작됐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혁명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미흡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법과 제도의 테두리 내에서 국민들은 청원을 하는 입장이라는 점, 아래로부터의 힘이 기존 제도 권력을 대거 쇄신하거나 대체하려는 지점으로 나아가진 않았다는 점, 전반적인 분야의 권력 재편 의지로까지 시민들의 에너지가 발전한 것은 아니라는 측면에서 혁명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였다.
구체제의 핵심적인 기반인 재벌을 중심으로 하는 기성 권력구조, 정경유착 시스템에 균열이 생겨 무너지는 방향으로 간다면 그때 혁명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라는 평가였다. 기존 시민혁명의 역사를 혁신했다는 점에서 진행 중인 열망의 혁명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지만 대의제는 제도화된 권력을 기반으로 작동되는데 이 권력을 국민이 제어·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았다는 평가였다.**
그러한 평가를 통해 제기된 의회를 견제하려는 ‘시민의회’나 삼권을 견제하려는 ‘제4부’도 의회를 통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의제는 기득권 집단에 의해 독점된 ‘그들만의 리그’가 될 가능성이 늘 상존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존재 근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헌법’을 말하게 된다. 제7차 개정헌법(유신헌법)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는 국민 주권론을 사실상 부정한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방법은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해” 가능하다는 단서를 붙여놓았다는 것이다. 유신정권이 무너진 뒤 개정된 현재의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여전히 44년 전의 유신 시대와 결별하지 못한 듯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로 인해 형식은 있으나 그에 맞는 실질적인 내용은 있는가 묻게 된다. 그들이 국민의 권리를 대의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도록 헌법을 준수하고 있는가. 오히려 국민의 주권 행사를 방해하는 위헌을 하고 있지 않은가 묻게 되는 것이다.
2021. 11. 6.
*2020년 1월부터 2021년 7월까지 등록된 총 3,307건의 청원 중 상임위 논의를 거쳐 최종 결과에 도달한 건 5건에 불과하다. 입법청원 접수 건수는 16대 국회부터 해마다 줄고 있는데,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가 제대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국민동의청원과 대의민주주의」, 2021.10.23. YTN 기사.
**「시민의회를 생각한다」, [녹색평론], 통권 제154호 2017.
***이진순외,『듣도 보도 못한 정치』, 문학동네 2016, 12쪽.
****이진순외, 9-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