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는 것으로 말하고 싶어하는/말해야 하는 것, 혹은 문제적인 현실을 말하고 싶어하는/말해야 하는 것이 영화가 하고 싶은/해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구스 반 산트 감독의 2003년 연출작 <엘리펀트 Elephant>는 문제적인 현실을 냉랭하게 '보여줌'으로써 문제적인 현실이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려던 영화로 기억된다.
영화는 미국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두 명의 학생에 의해 발생한 학교 내에서의 총기난사 사건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면 틀린 설명일 수도 있다. 적어도 영화가 의도한 바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영화는 미국의 어느 고등학교 학생들의 일상을 다루고 있고, 그 가운데에 총기난사라는 사건, 아니 일상도 있었다는 사실을 그저 보여주고 있을 뿐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총기 난사라는 사건을 중심에 두고 여러 영화 장치들을 통해 그 사건의 발생과 원인, 결과 등을 밝혀 보여주는 것이 여느 영화들의 연출방식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반대다. 노란 단풍나무와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과 베토벤의 ‘월광’이 흐르는 평온한 풍경을 배경으로 학생들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카메라는 비추고 또 비춘다. 같은 시간을 다른 시선으로. 그 일상 중에는 총기 난사라는 사건/일상도 있을 뿐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여느 영화들처럼 그 사건의 충격적인 잔인함을 중심에 두고 그것을 설명하려고 했다면, 그 잔인함이 뜻하지 않게 영화 속 재미를 위한 장치로 작동한다면, 잔인함을 다루는 수 많은 영화들 중의 하나로 기억되었을 수도 있다. 총기 난사 사건은 곧 잊혔을 수도 있다.
영화니까, 나의 현실은 아니니까 위안 삼으며 잔인하지 않은 현실로 돌아오면 그 뿐일 테니까. 하지만, 감독은 총기난사를 특별한 장치 없이 냉랭하게 보여줌으로써, 그 사건의 잔인함이 일상 속에 존재하는 우리의 모습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무섭게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을.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났다. 하지만, 현실은 끝나지 않았는데. 이제 어떻하나. 총기난사사건이 잔인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된 건가.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 먼 것이라고 위안을 삼을까. 아니면, 그 아이들이 동성애자이며, 폭력적인 게임을 하며, 나치에 대한 비디오를 보는 소수 문제적인 아이들이 저지른 일 일뿐이니까, 선생님들에게 쓰레기취급을 당하는 문제아들이니까, 함께 했던 동료마저 총으로 쏘는 잔인한 아이이니까, 그 아이들의 문제적인 행동만을 문제 삼아서 바꾸면 될 것인가. 아니면, 그 아이들을 만들어 놓은 교육을, 그런 교육을 하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자고 외쳐야 할 것인가.
감독은 나의 이런 생각에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 잔인한 현실 앞에서 원인을 생각하며 해결책을 생각하는 나에게 감독은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이 시간에 다른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잠시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있느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현실을 한두 가지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고. 영화 속 아이들의 동일한 시간의 행동들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며, 총기 난사를 한 그 아이들의 몇 가지 행동으로 그 사건의 원인을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감독은 말하고 싶을 것이다.
해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현실을 보여줬으니, 그 다음은 알아서 하라고?
물론, 우리는 아무도 ‘코끼리’와 같은 거대한 현실의 전체를 알 수 없으며 그 어떤 것이 가장 본질적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원인을 하나로 규정할 수 없으며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사전에 방지할 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아니며, 전체를 알아가는 것, 그 중에서도 좀 더 본질적인 것을 규정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이미 우리의 현실이 되었지만 대다수가 바라지 않는 현실이라는 사실이다. 총에 맞고 싶지 않다면 냉랭하게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 문제의 해결이 소수의 아이들을 바꾸는 것이든, 총기 구입을 규제하는 것이든, 그 아이들을 만들어 놓은 사회구조를 뒤집는 것이든, 그 결과이자 원인이기도 한 그 문제를 당장,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우리의 일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겠다.
2005. 8. 16.
[미 학교 총격, 2021년부터 급증…건수·희생자 10년새 4배], 연합뉴스, 2024.12.18.
10년 전인 2010년대 초와 비교하면 발생 건수와 희생자(사망자·부상자) 수 양쪽 다 각각 4배 이상으로 늘었다.
2017년까지는 발생 건수가 60건을 초과하는 연도가 단 한 번도 없었으나, 2018년 199건, 2019년 124건으로 기존 기록의 2배를 훌쩍 넘어섰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학교 휴교 기간이 길었던 2020년에는 116건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이어 2021년 257건, 2022년 308건, 2023년 349건으로 역대 최다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2024년은 연말까지 2주가 남았는데도 이미 325건이다.
-위 기사를 접하면서 1999년 미국의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의 충격이 떠올라 그 사건을 영화화 한 작품을 꺼내본다. 그 사건의 원인을 파헤친 다큐멘터리로 마이클 무어 감독의 [볼링 포 콜럼바인](2003)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