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스스로 깨우칠 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언젠가 깨달은 나는 누군가를 깨우치려 애쓰지 않는 편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깨달음도 그렇다.
늦었다고 깨닫는다면, 깨닫기만 한다면, 깨달은 그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것은, 이미 늦었지만 그래도 늦었다고 깨달음으로써 더 이상 사태가 나빠지지 않도록, 더 늦기 전에 사태를 되돌리려 무언가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깨달음이다. 지금도 늦었다는 것을, 더 늦기 전에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면 사태를 되돌리기가 더 늦어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텐데, 깨달음은 스스로 깨우치지 않고서는 얻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스스로 깨우치기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늦었다고, 지금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더 늦어진다고, 사태가 더 나빠진다고 주변에서 이야기해도 스스로 그렇게 깨닫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사태가 더 나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무언가를 이야기해도 듣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켜보는 이의 안타까운 마음은 지켜보는 이의 마음일 뿐인 것이다.
깨달음은 스스로 얻는 것이다.
2025.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