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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에 가까이 가려할 뿐

by 영진


페터 지마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이상적인 발화상황”을 비판한다. ‘동등한’ 발화를 통해 ‘원만한’ 합의에 이를 수 있는 조건을 만들겠다는 것은 말 그대로 ‘이상적’일 수 있다. 페터 지마가 ‘비판적인 대화’를 강조하는 것도 ‘이상적인 발화상황’도 만들어 가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대화가 잘 이루어지든 안 이루어지든 대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만큼 대화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대화의 조건들도 갖춰지는 것이지, 대화하기 좋은 이상적인 상황이 어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일 게다.

그런 점에서 페터 지마는 기득권 세력의 ‘담합’이나 ‘침묵의 카르텔’, ‘비밀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태도들, 즉, 애초에 대화하지 않겠다는 불통의 태도, 합의에 이르거나 이견을 좁힐 수 있는 가능한 대화마저 차단하고 방해하는 태도, 모든 언어를 이데올로기화하는 음모적인 태도 등을 ‘독백적 술화’라고 비판하는 것일 게다.


그러한 태도 자체가 이미 ‘진리’와 멀어지려나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신들만이 진리라는 허위를 고백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진리는 대화를 통해서 합의에 이른 것이 아니다. 누구든 자신들이 진리일 수도 있다.


그렇듯, 진리는 비판적인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진리가 진리임을 검증해 나가는 것일 뿐이다. 한데, 진리가 무엇인지 검증의 과정을 거치지 않겠다는 태도는 진리 자체를, 자신들의 진리마저 부정하는 태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페터 지마는 ‘이론과 이데올로기’를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는다. 검증된 과학에 가까울수록 이론에 가낍고, 과학과 멀어질수록 이데올로기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 관계는 언제든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진리와 허위의 관계도 그럴 것이다.


과학이라면, 이론이라면, 검증을 통해 부단히 진리에 가까이 가려 할 뿐이다. 그런 만큼 진리일 가능성은 커질 뿐인 것이다.



2025.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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