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다’는 언어에는 ‘질이나 수준 등의 정도에서 더 좋거나 앞서 있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한국어 사전)
언어는 관념의 산물인데 사회적 ‘약속’이라고 불린다. 사회적 약속이라는 점에서 규제적인 성격을 갖지만 관념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언어는 ‘하나’지만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낫다’는 ‘언어’도 예외는 아니다. ‘더 좋거나 앞서 있을 때’, ‘낫다’는 표현을 쓴다지만, ‘질이나 수준’이 ‘어느 정도’ ‘더’, ‘앞서야’ ‘낫다’는 ‘뜻’으로 ‘약속’될 수 있는지는 사회 구성원들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언어의 ‘뜻’은 사전에 있지 않고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어떤 대상이나 상태의 질이나 수준, 더 나아가 한 사회의 질이나 수준에서 어느 것이 ‘낫다’라고 받아들이는 데에는 각자가 소유한 ‘부와 권력’,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위치’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하나’의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 사이에 사회의 ‘질이나 수준’에 대한 인식의 격차가 클수록 구성원들의 삶의 ‘질이나 수준’의 격차도 크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그럴 경우,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약속이 지켜지기도 어려울 것이다.
언어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인 소통이나 이해도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적대적이기 쉬울 것이다. 그러한 사회의 ‘질이나 수준’은 ‘낮다’고, ‘질이나 수준’이 낮은 사회라고 ‘언어화’할 수 있겠지만 그를 받아들이는 것도 구성원마다, ‘부외 권력’의 위치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애초에 ‘질이나 수준’에 따른 ‘좋고 나쁨’, ‘앞서거나, 뒤 서거나’와 같은 것이 ‘정도’의 차이일 뿐 ‘낫다, 못하다’로 규정할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사회 구성원들도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구성원들의 ‘차이’를 존중해주는 사회가 ‘질이나 수준’이 ‘더 낫다’고 받아들이는 구성원들도 있을 것이다.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사회,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고유성이 존중되는 사회, 해서,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가 ‘질이나 수준’에서 ‘더 나은’ 사회라고 받아들이는 구성원들도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존중과 민주와 평등의 사회가 이상理想일 뿐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어찌되었든 ‘지금, 여기’에서부터 불평등의 ‘격차’를 줄여나가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회가 더 ‘낫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고, ‘격차’에 따른 반민주, 불평등의 정도가 사회의 ‘질이나 수준’을 결정한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언어는 ‘현실’을 반영한 관념이기도 하다. 해서, 사회적 약속으로서 언어를 지킬 가능성도 ‘현실’이 어떠한가라는 현실에 대한 인식의 정도에 따라 커질 것이다. 현실에 대한 인식의 격차가 크지 않다는 것은 현실의 '불평등' 격차가 크지 않다는 것을 뜻할 것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2024.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