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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의 의미

by 영진

1783년 임마누엘 칸트는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답한다.


칸트가 밝히는 ‘계몽’은 ‘자기 스스로 초래한 미성년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미성년 상태’는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는 자신의 오성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다.


미성년 상태의 원인은 오성의 결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 자신의 오성을 사용하려는 결단과 용기의 결여에 있으며 그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도 말한다.


과감히 알려고 하라! 너 자신의 오성을 사용하려는 용기를 가져라! 이것이 칸트가 밝히는 계몽의 표어이다.

인간은 이미 이성적 존재라는 점에서 스스로 알려 하고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 용기 있게 이성을 사용할 때 미성년 상태에서 벗어난 존재, 즉, ‘자율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일 게다.


해서, 칸트가 밝히는 계몽된 존재는 자율적인 존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오성을 지닌 책 한 권’, ‘양심을 지닌 성직자’, ‘섭생을 판단해주는 의사’ 등의 ‘다른 사람의 지도’에 따르는 미성년 상태에서 ‘나는 스스로 애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돈만 지불할 수 있다면 나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귀찮은 일들은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맡아줄 것이다’




한데, 칸트는 그 이성의 자유가 공공에 대해서, 공공을 위해서 사용될 때 계몽은 가능할 것이라고도 밝히는데, 그의 답변에서 무엇보다 주목을 끄는 것은 “공중은 아주 느리게만 계몽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혁명을 통해서는 아마도 개인적인 전제주의 그리고 탐욕적이거나 지배욕에 의한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사고방식의(10) 진정한 개혁은 결코 이루지 못한다. 오히려 새로운 편견이 옛 편견과 마찬가지로 생각 없는 거대한 군중을 조종하는 끈 노릇을 하게 된다”


칸트가 말하는 계몽의 결과는 ‘사고방식의 진정한 개혁’을 의미할 것인데, 그것은 ‘전제주의’, ‘탐욕’, ‘지배욕’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거대한 군중을 조종하는 끈 노릇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칸트의 답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계몽, 계몽된 존재는 자율적 존재로서 지배하지도 지배당하지도 않으면서 그와 같은 공중이 되기 위해 공공을 위해서 이성의 자유를 사용할 줄 아는 결단과 용기를 가진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시민’의 ‘인륜성’에 기반한 ‘영구 평화’를 설파했던 18세기 칸트의 이성은 20세기 인류의 야만 ‘나치’, ‘아우슈비츠’를 통해 ‘계몽’은 ‘신화’였을 뿐이라는 회한과 함께 ‘이성의 죽음’을 알린다.


한데, 인류의 야만을 직접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을 말한다. 나치, 아우슈비츠와 같은 야만을 넘어설 수 있는 것도 결국 이성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시론적’인 현실에 대한 촘촘한 사유, 권력 ‘관계’에 대한 사유, 인간 이성을 자본과 권력의 도구로만 사용하는 도구적 이성, 자신과 다름을 틀림으로 억압하는 자본과 권력의 동일성 원리에 대한 비판, 동일성에 의해 배제되는 비동일성에 대한 부단한 사유, ‘짜임관계’와 같은 동등한 관계의 현실화, 평화롭게 된 과학기술의 사용과 같은 ‘변증법적 사유’가 그것이다.


아도르노는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 아니라고 말한다. 현실이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긍정이 될 때까지 부정하는 과정에 충실할 뿐이라는 것이다. 혁명가라고 불리는 레닌과 체 게바라가 강조했던 것도 자율적인 주체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매일 교육하는 것이었다.


‘현실에 대한 철저한 인식, 공공을 위한 공중이 되는 자기 교육, 자발적인 활동’이 칸트를 이어 그들이 강조한 그와 같은 자율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 오늘날의 ‘계몽’의 의미가 아닌가 싶다.



2025. 2. 4.



계몽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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