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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이란 무엇인가

by 영진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


1783. 12. 5. 임마누엘 칸트



계몽은 인간이 자기 스스로 초래한 미성년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미성년상태는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는 자신의 오성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미성년 상태는 그것의 원인이 오성의 결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 자신의 오성을 사용하려는 결단과 용기의 결여에 있다면 스스로 책임져야하는 것이다. 과감히 알려고 하라! Sapere aude! 너 자신의 오성을 사용하려는 용기를 가져라! 이것이 계몽의 표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이 오래전에 타인의 지도에서 해방한 후에도 기꺼이 한평생 미성년 상태로 남아있으며, 그렇게 쉽게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보호자로 자처하는데 그 원인은 게으름과 비겁함이다. 미성년 상태로 있는 것은 아주 편하다.


나를 대신하여 오성을 지닌 책 한 권을 내가 가지고 있다면, 나를 대신하여 양심을 지닌 성직자가 있다면, 나를 대신하여 섭생을 판단해주는 의사가 있다면 등등. 그러면 나는 스스로 애쓸 필요가 없다. 내가 돈만 지불할 수 있다면 나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귀찮은 일들은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맡아줄 것이다.


인간의 압도적인 다수(여성 전체를 포함하여)의 경우 성년 상태로의 걸음을 어렵고도 매우 위험한 일로 여긴다는 것, 친절하게도 그들에 대해 지휘 감독을 자임한 후견인들은 이미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


우선 그들은 자신들의 가축을 멍청하게 만들고, 이 온순한 피조물들이 그들이 가두어 둔 보행기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못하도록 정성들여 예방해둔 후에, 혼자서 걸으려고 할 경우에는 그들을 위협할 위험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위험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어서 몇 번 넘어지면 마침내(9)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예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소심해지고 겁먹어서 그 이상의 어떤 시도도 못하게 된다.


따라서 각 개인이 거의 본성이 되어버린 미성년 상태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것은 어렵다. 그는 심지어 그 상태를 좋아하게 되고 당분간은 실제로 자신의 오성을 사용할 능력도 없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한 번도 그에게 그런 시도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도와 형식, 자신의 천부적인 자질을 이성적으로 사용하거나 오용하는 이 기계적 도구들은 영원히 지속되는 미성년 상태의 족쇄들이다. 그렇다 해도 그것을 벗어 던지는 사람은 아주 좁은 도랑을 불안정하게 넘게 되는데, 그것은 그가 그런 자유로운 행동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정신의 노력을 통해서 미성년 상태에서 벗어나고, 그러고도 확고하게 걸어가는 데에 이르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하지만 공중이 자기 스스로 계몽될 가능성은 그보다 더 크다. 아니 그들에게 자유만 허락된다면, 거의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심지어 거대한 군중의 후견인들로 자리 잡은 사람들 중에도 항상 몇몇 사람은 스스로 사유하게 되며, 이들은 스스로 미성년 상태의 멍에를 벗어던진 후에는 자신의 가치와 스스로 사유해야 한다는 인간의 소명에 대해 이성적으로 평가하는 정신을 퍼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특기할 점은 애초에 후견인들에 의해 멍에를 짊어지게 되었던 그 공중이 그 후에는 스스로 계몽의 능력이 없는 몇몇 후견인들로부터 사주를 받게 되면 그들을 강요해서 이 멍에 아래에 머물려고 한다는 것이다. 편견을 심어주는 것이 그렇게 해로운 것은 그 편견들이 결국에는 그것들의 장본인들, 또는 선행자들에게 복수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중은 아주 느리게만 계몽에 이를 수 있다. 혁명을 통해서는 아마도 개인적인 전제주의 그리고 탐욕적이거나 지배욕에 의한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사고방식의(10) 진정한 개혁은 결코 이루지 못한다. 오히려 새로운 편견이 옛 편견과 마찬가지로 생각 없는 거대한 군중을 조종하는 끈 노릇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계몽에 요구되는 것은 자유뿐이다. 그리고 단지 자유라고 불릴 수 있는 모든 것들 중 가장 무해한 것은 바로 자신의 이성을 모든 일에서 공적으로 사용하는 자유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사방에서 외치는 소리를 듣는다.


논쟁하지 마라! 장교는 말한다. 논쟁하지 말고 훈련하라! 재정관은 말한다. 논쟁하지 말고 돈 내라! 성직자는 말한다. 논쟁하지 말고 믿어라!(세상에 유일한 군주는 말한다. 논쟁하라, 너희가 원하는 만큼, 너희가 원하는 것에 대해, 그러나 복종하라!)


여기 도처에 자유의 제한이 있다. 하지만, 어떤 제한이 계몽을 방해하는가? 어떤 제한이 방해하지 않고 도리어 촉진하는가? 내가 답하겠다. 자기 이성의 공적인 사용은 언제나 자유로워야 하며, 그런 사용만이 인간에게 계몽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이성의 사적인 사용은 종종 매우 협소하게 제한될 수 있지만, 그 때문에 계몽의 진보가 특별히 방해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자기 이성의 공적인 사용을 누군가가 학자로서 전체 독자 공중 앞에서 자기 이성을 사용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사적인 사용을 나는 어느 정도 그에게 맡겨진 시민적 직책이나 공직에서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부른다. 오늘날 공공체의 이익을 위해서 행해지는 일들에는 어떤 제도적 장치가 필수적이며, 그 장치를 통해서 그 공공체의 몇몇 구성원들은 단지 수동적인 태도만 취해야 하는데, 이것은 정부가 인위적인 만장일치를 통해서 공적인 목표의 방향을 잡거나, 적어도 이 목표들이 와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여기서는 당연히 논쟁이 허용되지 않으며 사람들은 복종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 기계의 부속이 동시에 자신을 전체 공공체의 일원으로, 나아가 세계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여기는 한, 따라서 글을 통해 본래의 의미에서(11) 궁중에게 다시 말하는 학자의 자격으로는 물론 논쟁할 수 있는데, 그로 인해 그가 수동적 구성원으로 속해 있는 업무들에는 해가 되지 않는다.



2007. 3. 22.


영진 번역.



계몽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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