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속의 작가이기에 현실이 작가를 만드는 것이지만, 현실 속의 작가이기에 작가가 현실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실은 인간들의 현실에 대한 총체적 인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인간들의 간절한 소망에 의해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현실에 대한 총체적 인식과 간절한 소망이 함께 한다면 바라는 현실을 만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만약에 말이야, 어떠한 가정이든 할 수 있지만 ‘상처가 상처를 보듬는 따듯한 사랑’보다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채 헤어지는 사랑’이 더 현실적일 수 있지만 두 사람의 행복한 결말을 이루어주고 싶었던 작가의 ‘현실적인 소망’으로 인해 드라마는 작가의 소망 드라마이면서도 ‘우리’의 소망 드라마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가난과 버려짐’으로 무너져 가는, 파괴와 분열로 파멸해 가는 인류의 시간 속에서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은 한 줄기 빛과도 같다.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믿음의 빛이 발하고 있다는 것은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현실에 대한 총체적 인식에 근거한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이 밝혀주는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일 테다. 그들의 지독한 믿음으로 인해 견고할 리 없는 세상은 견뎌지고 있는 것일 테다.
-하영진, ‘그 해 우리는: 지독한 믿음’, <보라의 시간> 50, 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