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가 멋있어 보였던 건 자기 연주를 하게 되었다는 것 때문이겠다. 그리고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가져다준 ‘연습’ 덕분이겠다. 그 연습에 플렛처와 같은 권위자가 한몫했다는 것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최고의 연주, 최고의 삶은 어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그렇게 불리는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그렇게 불리고 싶다면 오히려 그런 기준에 꺾이지 않고 스스로의 방식으로 해나가는 연습에 열중할 때 가능할 수 있겠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최고라는 것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며 그 순간만이 최고라 불릴 수 있겠다.
-하영진, ‘연습의 의미’, <보라의 시간> 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