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동상을 직접 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은 것에는 예술가 케테 콜비츠Käthe Schmidt Kollwitz가 있다. 그녀의 판화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터라 독일 베를린의 한 동네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의 동상이 반가웠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많은 베를린의 빈민가인 그 동네에서 의사였던 카를 콜비츠와 결혼 생활을 한다. 남편은 빈민 치료에 헌신하였고 이 경험이 케테의 예술적 주제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케테 콜비츠는 '직조공의 봉기' 연작으로 유명해진다. 그 작품은 케테가 독일 슐레지엔 지방의 직조공들이 1844년 일으킨 실제 파업을 다룬 하우프트만의 희곡《직조공》을 보고 크게 감명 받아 모티브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후 콜비츠는 《농민전쟁》이라는 책을 읽다가 농민 봉기를 선동한 '검은 안나'라는 여성을 알게 되고 독일 농민전쟁을 다룬 《농민전쟁(Bauernkrieg)》 연작을 제작하여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전쟁에 참전한 둘째 아들 페터를 잃게 된 케테는 심한 상실감과 고통에 시달린다. 아들의 죽음으로 전쟁의 비인간성과 참혹함을 깨달았고 더 이상 "씨앗을 짓이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때부터 케테는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가 담긴 판화, 조각 등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판화가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아래 사진)인데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그에 참전한 손자마저 잃게 되면서 그녀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녀의 작품은 개인적 상실에서 출발했지만 이를 보편적 메시지로 승화시키며 전쟁과 폭력의 비극을 고발하고 평화를 염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녀가 50년간 살았던 베를린 북부 바이센부르크가 25번지는 나중에 ‘케테 콜비츠가’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녀의 작품 제목인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는 괴테가 한 말이면서 그녀의 유언이기도 하다.
[나무위키]의 '케테 콜비츠'를 참고하여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