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는 케테 콜비츠의 동상만 아니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나란히 서 있던 동상도 있었고,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 지하철 역도 있었고, 작가 고트프리트 벤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도서관도 있었다. 브레톨트 브레히트를 기념하던 레스토랑, 리프크네히트나 로자 룩셈부르크의 흔적을 기념하던 거리도 있었다.
역사와 예술의 도시라고 불리는 만큼 베를린에는 그들 말고도 알만한 사람들을 기념하는 기념물들이 꽤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베를린의 ‘기념물’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유태인 학살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이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광장(Holocost Memorial)’(아래 사진)과 기념관일 것이다.
베를린에는 반제(Wannsee)라는 호수가 있다. 도심에서 30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시민들의 도시 근교 휴양지라고 할 수 있다. 주말 피크닉, 자전거 라이딩, 가족 나들이, 수영, 일광욕을 즐기는 곳이다. 베를린에서 지낼 숙소를 찾다가 운 좋게 머물게 된 곳이기도 하다. 덕분에 나 역시 반제를 즐길 수 있었다.
한데, 그 곳에서 뜻밖의 역사적인 장소를 만나게 되었다. 반제 인근에는 ‘하우스 오브 반제(Haus der Wannsee-Konferenz)라는 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가 유대인 말살 계획을 논의했던 장소가 있었다. 그와 관련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곳에서 그토록 끔찍한 계획을 논의했다니 10여 분 떨어진 숙소에서 며칠간 밤잠을 설쳤던 기억도 있다.
그 곳에서 뜻밖의 사람들도 만났다. 이웃집에 20대에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오신 분들이 살고 계셨다. 2013년 당시 퇴직하여 60을 넘은 나이였고 두 분이서 40년 넘게 친구처럼 지낸다고 했다. 한국과 독일에서의 노후를 계획하고 계시기도 했다.
한국의 동대구역 광장에 친일독재反인권의 상징인 자의 동상이 세워진다고 했을 때 결식아동을 돕기 위해 10여 년 가까이 그 곳 광장에서 노래하던 친구들과 베를린에서 만난 파독 간호사 두 분이 생각나기도 했다. 시장과 시의원이라는 자들이 그런 자의 동상을 세운 이유는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이겠지만 친일독재反인권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두 분의 안부와 함께 베를린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되는 꿈을 키우던 바이올린을 하던 친구, 대학을 다니며 작곡가의 꿈을 키우던 친구, 대학원을 다니며 복지를 공부하던 친구, 베를린에서 정착하기 위해 분투하던 친구의 안부도 묻는다.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는 그들이 되었지만.
2025. 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