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사회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다. 법이 차별을 야기하는 근원을 해소할 수는 없다. 하지만 폭력을 방치하지 않고 방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 마저 없다면 차별이라는 폭력은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이 될 것이다.
약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보호해 주기 위해서 정부가 있고 법과 제도가 있는 것인데 정부와 법과 제도가 힘 있는 자들의 목소리만 듣는다면 약자를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사회의 약자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면 정부도 사회도 없는 것이다.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외모,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 신분”
한국인들이 겪었다는 차별의 요인들이다. 각자의 처지가 다른 상황에서 고통의 우위를 가릴 수는 없는 일이다. 차별에 따른 고통이라면 남의 고통보다 자신의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또한 자신이 당하는 폭력은 쉽게 알아차리지만 자신이 가하는 폭력은 알기 어려울 수 있다.
그처럼 차별이라는 폭력은 폭력을 모르는 폭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모두가 모두의 차별과 고통을 챙겨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나보다 더 큰 고통, 모두가 겪는 공통의 고통에 대한 생각도 하면서 서로의 고통을 챙겨가야 할 것이다.
-하영진, ‘공통의 고통’, <보라의 시간> 232-2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