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노동절이기 때문만은 아니지만 노동절이기도 해서 ‘노동자’를 생각한다.
고1 때 울산 고모 댁에 다녀오다 버스 파업으로 발이 묶인 상황에서 버스 기사와 승객들의 실랑이가 생각나고,
선생님도 노동자라던 비리재단과 맞서던 선생님들을 연행하러 온 사복경찰들을 막아서던 친구들이 생각나고,
열대여섯 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열대여섯 나이의 여공들을 챙기던 전태일이 생각나고,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에 끼인 찰리, 기계의 나사를 조이다 여성의 옷에 달린 단추를 나사인 줄 조이려다 정신병원에 갇힌 찰리, 대량실업에 시위를 하던 실업자들의 무리에 휩쓸려 감옥에 갇힌 찰리도 생각나고,
기계 사이에 끼어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 기름먹은 장갑 속에서 꺼내어 36년 한 많은 노동자의 손을 보며 말을 잊는다 박노해 시인의 <손무덤>도 생각나고,
공장 속에서 이 옷이 되어 팔려 왔지만 난 사람이었네 가수 루시드 폴의 <사람이었네>도 생각나고,
영화 <빵과 장미>에서 미국 LA의 건물 청소를 하던 마야는 인권 운동가 샘을 통해 동료들과 함께 회사로부터 ‘빵과 장미’를 찾는데 성공하지만 언니 로사의 배반으로 다시 멕시코로 추방당하는 두 자매의 이야기도 생각나고,
영화 <자유로운 세계>의 이주노동자 직업소개소에서 일하던 앤지와 로즈가 보여주듯 자신들이 겪은 차별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자영업자가 되었지만 자신들이 겪은 차별과 착취와 불법을 통해서/통해야 더 많은 이익을 얻게되는 구조적인 모순의 이야기도 생각나고,
정규직과 구분되어 차별을 겪는 비정규직 노동자, 반인권과 차별에 시달리는 이주노동자,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겪는 여성 노동자, 여성이면서 이주노동자인 이주여성 노동자도 생각나고,
엄마도 아빠도 아들도 딸도 친구도 이웃도 너나 할 것 없이 노동자인 노동자국가에서, 차별과 불평등을 야기하는 구조를 넘어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격차가 크지 않은 평등한 국가,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지 않는, 인류의 미래이기도 했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소외된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노동자국가,
그리하여 인간으로서 자아실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국가,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이 그러한 노동자국가로 성공할 수 있기를 생각한다.
2025.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