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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것

by 영진

수업은 천천히 진행되었다. 어떤 사람은 빨리, 어떤 사람은 더디게 익혔다. 누군가 빨리 익힌다고 칭찬하거나 진도가 빨라지는 일은 없었다. 누군가 더디게 익힌다고 선생님이 인상을 찌푸리는 일도 없었다. 느긋하게 진행되는 매일의 시간 속에서 나는 때때로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아고는 짜증을 내지 않는구나. 아고는 자신이 반복해서 가르쳐줘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구나.


수업을 듣기 위해 선행학습을 할 필요도, 끝나고 뒤늦게 이해하느라 절절맬 필요도 없었다. 빠짐없이 출석만 한다면 수업시간 내에 소화가 가능했다. 수업에서 긴장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왜 긴장했던 걸까? 그것은 내게 오랫동안 수업시간이란 무언가를 배우는 시간이라기보다는 평가받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나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돈도 많이 벌고 싶었고 유명해져보고도 싶었고 사업도 크게 해보고 싶었다. 학자금 대출을 다 갚고 저축액도 얼마간 쌓이자 물욕은 급격히 줄었다. 책을 내며 얼마간 독자가 생기자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결핍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나서야 내가 원했던 것이 돈이나 명성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원했던 것은 모멸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었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것이었다.


거의 늘 우등생으로 지냈지만 학창 시절은 여전히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오래 학교를 배경으로 한 악몽을 꾸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동체의 구성원을 성과별로 줄 세우고, 누군가를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일은 칭찬받지 못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영혼에 상처를 입힌다. 두 경우 모두 조건부 사랑을 약속하는 셈이니까.


-경향신문 2025. 4. 30. <탁월하지 않기> 중에서




“내가 원했던 것은 모멸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었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것이었다”


하미나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문장이다. 그와 동시에 인간 세상에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라는 물음을 갖고 있는 문장이기도 하다.


모멸감侮蔑感 업신여김과 깔봄을 당하여 느끼는 수치스러운 느낌


대통령, 정부 관료, 국회의원, 법조인, 지식인, 언론인, 재벌과 같은 기득 권력들이 노동자,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와 같은 국민들을 업신여기고 깔보며 만들어 온 한국 사회에서 모멸감을 느끼지 않으며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것을 갈망하며 거리로 광장으로 투쟁에 나서거나, 한국을 떠나거나, 세상을 떠난 수많은 인간들을 기억한다.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기에 작가의 문장이 인상 깊었던 것이고, 한국 사회에서 기득 권력들의 국민들에 대한 업신여김과 깔봄이라는 폭력이 점점 더 노골적이 되고 있는 것만 같아 인간 세상에서 과연 모멸감을 느끼지 않고 인간으로서 존중 받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라는 물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차등이 크지않은 사회라면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지않을까라는 물음을 갖고 있기도 하다.



2025. 5. 9.



[공감]탁월하지 않기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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