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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Aug 30. 2023

제국과 인류재앙

박경리의 <일본산고> 읽기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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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이나 일본의 과거사와 관련하여 ‘역사 왜곡’의 의문을 야기하는 한국 지식층의 발언들은 꾸준히 있어왔다. 그런 발언들이 한 일 양국의 과거사 청산을 통한 발전적인 관계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면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중에서 ‘위안부 할머니’ 문제와 관련하여 박유하가 쓴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정희진의 주장을 참고할 수 있다.      


정희진은 <제국의 위안부>의 내용 중에서 ‘사실’을 확인하면서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긴다. 먼저 정희진은 “‘할머니’들이 일본군과 동지 의식, 사랑을 나눈 경우도 있다”는 주장은 부분적 진실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누구에게 중요한 것일까? 당시 한국 남성? 일본 남성? 한국 여성? 일본 여성? 당대의 한일 관계?라고 물으면서 “군 ‘위안부’ 이슈를 다루는 한국 여성(의 몸)은 자신의 위치성 혹은 당파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저자는 보편적 주체 같아 보였다.”라고 견해를 밝힌다.      


정희진은 박유하가 주장의 주요 근거로 삼고 있는 센다 가코의 <종군위안부>(이송희 역, 백서방)의 서문은 <제국의 위안부>의 논조와 사뭇 다르다고 주장한다. 센다 가코는 ‘대일본 제국 육군의 치부 ‘종군 위안부’를 쫓아서’에서 강제성과 성노예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종군 위안부는 군의 명령에 의해 전장으로 끌려가 제1선 장병들의 성욕 처리 용구로서 이용되었던 여성”(12쪽)이라고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희진은 여성이며, 여성학자이며, 대학교수인 박유하의 ‘입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성매매에서 거래되는 것은 여성의 노동이 아니라 여성의 몸 자체다. 강제가 아니고 ‘자발적으로 돈을 벌러 갔다’는 입장을 강조하는 것은 군 ‘위안부’에 대한 다양한 이론(異論)이 아니라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성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나아가 정희진은 박유하를 포함한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한국의 ‘지식인’ 사회는 자신의 주장을 (생각 없이) ‘선포’하는 경향이 있다.” “‘표현’, ‘학문’, ‘자유’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담론 효과의 차원에서 살펴야 하는 문제이고 ‘편하게’ 주장할 수만은 없는 정치학의 영역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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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가 말하려던 것은 한일 “민족 간의 대립”이나 “양국 간의 증오가 지극히 저질 상태”(일산 72)라는 것이 아니었다. “엄청난 문화의 후퇴”, 그리하여 “근본적으로 세계가 그릇된 방향으로 파멸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에 대한 “물질보다 정신의 측면에서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장 귀한 것을 포기하고 경제적 동물로, 의식의 야만시대로 뒷걸음질 치고 이”다는 것이다.(일산 72) 그는 과거를 말하면서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사리를 명백하게 하지 않는 이상 잘못은 되풀이된다. 과거지사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데서 오는 근심이다. 장차 세계에서, 인류라는 차원에서 일본은 어떤 모습으로 있을 것인가. 인류에 속하는 일본인 역시 오늘 군비 확장의 의미를 깊이 새겨보아야 할 것”(일산 87)이라고 말한다.     


박경리는 민족주의와 민족주의의 비판에 대해, 인류의 미래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인류에게 일본은 어떠한 존재인가. 핵무기를 가질 때 그들은 그것으로 어떤 짓을 할 것인가. 세계 정복의 청사진은 일본 체제의 확대를 의미합니다.      


전 인류가 모두 현인신의 세키시가 되는 거고 소유물이 되는 거지요. 신국사상을 청산 안 하는 이유가 거기 있을 겁니다. 저의 이런 생각은 결코 감정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이 나타났다는 우려는 일본이 핵무기를 가졌을 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우려하는 것과 같습니다.”(일산 142-143)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며 민족주의도 필요 없게 된다.”(일산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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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수는 일본의 전쟁 재현 가능성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군국주의로 회귀하려는 것을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군국주의화가 완료된 일본을 전제로 놓고 미래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옳다”(굿일 189)고 그는 말하고 있다. 김교수가 그렇게 판단하는 데에는 전 세계적으로 골칫거리로 전락한 방사능 오염에 대해 일본이 대처하는 태도도 한몫했을 것이다.      


후쿠시마 방사능 사고는 수백 년간 수백조 원의 복구비용이 드는 전대미문의 재난이라고 알려져 있다. 일본 각 지역의 토양과 바닷물은 위험할 정도로 오염된 상태이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안전하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먹어서 응원하자’라는 충격적인 캐치프레이즈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는 것이다.(굿일 305-306)      


문제는 후쿠시마산만 방사능에 오염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본은 자국민에게 방사능 오염 식품을 먹여서 안전성을 증명하려고 하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수십 년 후 일본에서 충격적인 수준으로 발생할 갑상선암, 백혈병 환자들일뿐이다.”(굿일 309)      


더군다나 일본의 지진은 후쿠시마로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지진전문가 대부분이 30년 안에 초대형 지진 ‘난카이 도라프’가 발생할 확률이 80퍼센트이며 32만 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일본은 30년 안에 반드시 지진이 일어나며 지금 일어날지 내일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위험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굿일 309-310)      


상황이 이처럼 심각한데도 아베 정권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잠시 가동을 멈췄던 원자력 발전소 여러 곳을 재가동했으며 제2, 제3의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사고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심각한 현실에 처해 있다. 망조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굿일 309-310) 이미 인류가 ‘땅’의 파괴로 인해 식량문제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식량 문제에서도 심각한 피해를 겪는 것은 일본 국민만 아니라 이웃인 한국인들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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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중은 원전의 개수가 곧 원전사고가 일어날 확률을 의미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실제로 원전 개수 1위 미국(104기), 3위 일본(54기), 4위 러시아(32기)에서 사고가 일어났었다. 일본은 후쿠시마라는 핵 재난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지진의 위험이 닥쳐올 수 있음에도 핵 폐기는커녕 원전을 재가동한다는 것은 ‘광기’라는 말로 밖에 이해할 도리가 없다.      


인류가 일본의 광기를 방관할 경우 재앙은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일본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인류가 하루빨리 핵을 폐기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독일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2022년까지 원자력발전소(17기)를 모두 폐쇄하기로 확정했다는 사실은 인류의 핵 보유 국가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독일이 일본과 같은 전쟁범죄 국가였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들은 신재생에너지 시대를 열어가고 있기도 하다.      


전 세계가 화석연료를 대규모로 사용하면서 배출된 온실가스로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에 따른 인류재앙의 위험성을 인식하면서 해결방안을 모색해 온 인류에게 ‘지구기온 상승 1.5도 제한’을 위한 CO2 감축은 당면과제가 됐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기후변화 위기에서 인류를 구할 유일한 방안인 양 세계가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이 ‘2050년까지 넷제로(net zoro)’이다.      


하지만 조찬제는 넷제로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다행이라고 말한다. 지구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할 수 있는 시간은 짧게는 6년 7개월밖에 남지 않았는데 2050년 넷제로는 너무나 먼 목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성장을 추구하면서 탄소중립에 필요한 과감한 감축이 가능할지 의문”이라는 녹색연합 공동대표 조현철 신부의 말에 공감을 표하면서 “넷제로라는 신기루를 좇기보다 CO2 감축으로 정책 방향을 즉시 전환해야 한다”라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의 기후위기비상행동이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에 요구하며 제시한 내용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기후재앙을 늦추기 위한 ‘탈석탄’ 과정에서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 삶’에서 배제되어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와 농민 등이 참여하는 정의로운 전환계획 수립’에 한국 정부는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박경리와 김교수를 통해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본 결과 민족을 넘어 인류의 공영(共榮) 말하기 이전에 인류의 유지와 존속을 위해서라도 일본의 광기에 대해 제대로 알고 널리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있다. ‘민족을 넘어, 영토를 넘어전쟁의 위협과 핵보유국 일본의 광기에 대해 알고 알려야  것이다.            


“   ” 인용은 박경리 <일본산고>, 다산책방 2023 / 정희진 「군 위안부 문제의 ‘희비극’」,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교양인 2021 / 김교수 <굿바이 일본>, 그린하우스 2019 / 김익중 <한국 탈핵>, 한티재 2013.



2022.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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