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죽음’을 말하는 지금, 이 순간. 나의 관심은 ‘민주주의의 확장’에 있다. 마침, 랑시에르가 <문학의 정치>라는 책에서 그런 뉘앙스로, 즉, 자신은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식으로 말씀을 하고 계시다. 저명한 지식인의 말씀이라 적당히 넘길 수 없다. 그분들의 말씀이 곧 권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이 말이 되고 말이 사회의 공기가 되고 언론이 되고 상품이 되고 권력이 되고 자본이 되고 되고 되어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민주주의를 확장한다면 반길 일 아닌가. 그렇다면 ‘확장’의 의미를 물어야 하겠다.
‘문자’의 민주주의를 통해 말하지 못했던 이(것)들이, 글 쓰지 못했던 이(것)들이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는 ‘문학의 정치’가 민주주의를 확장시켰다니, 문학을 통해 민주주의가 확장될 수 있다니 반길 일이다.
그들이 말하지 못했다는 것, 글 쓰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민주적이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말하기와 글쓰기가 민주주의의 확장을 의미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민주적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내용적으로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하는 말이다. 그렇게 묻고 보니 민주주의의 내용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어떤 목소리도 글쓰기도 배제되지 않는, 모든 목소리와 글쓰기를 포괄하는 것은 민주적인가라는 것이 나의 물음이다. 어떤 목소리도, 글쓰기도 배제하지 않으려는, 모든 목소리와 글쓰기를 포괄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하지만 포괄=민주, 배제=반민주. 이런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공식화하는 것은 반민주적인 태도라고 여긴다. 현실에서 모두를 포괄하거나 모두를 배제하는 경우는 없다. 상대적으로는 얼마든지 민주적일 수 있고 또한 상대적으로는 얼마든지 반민주적일 수 있는 것이 현실일 뿐이다. 반민주주의가 민주주의 행세를 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그런 ‘현실’을 인정하는 자세도 중요하겠고 민주주의를 민주화하겠다는 자세로 서로 민주적이기를 요구하는 것은 늘 필요하다. 그 요구의 목소리와 글쓰기는 그런 행위를 할 수 있다는 형식적 차원을 넘어 지금껏 말하지 못하게, 글 쓰지 못하게 했던 지배 권력이 누구인지 분별하고, 그 지배 권력을 향한 말과 글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신의 목소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주인 되는, 내용적으로도 민주화하는 길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형식과 내용이 모두 확장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확장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죽었을지도 모르는 민주주의를 살리는 길일 것이다.
2021. 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