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직장에서 이민 과제를 하면서 그때 생각이 났다. 경제연구원 특성상 주로 통계를 활용해 ‘노동력으로서 이민자’를 분석한다. 이들은 언어능력, 학력, 숙련도, 체류 기간에 따라 우리나라에 필요한 인력과 필요 없는 인력으로 나뉜다. 이민자들이 한국에 머물 수 있는 기간과 활동 범위는 그들이 지닌 비자가 정해준다. 어떤 이는 합법 체류자로, 어떤 이는 불법 체류자로, 어떤 이는 난민 또는 인도적 체류자로 분류된다.
그런데 사람은 통계로 간단히 분류하기엔 너무 큰 존재다. 여느 한국인이 그렇듯, 이민자들도 학력, 숙련도, 국적, 민족이라는 경계에 구속받지 않고 삶의 형태를 확장하길 원한다. 단순 노무직으로 들어왔다가도 기술을 배워 전문 인력이 되고 싶을 수 있고, 제조업종에 고용됐다가도 적성에 안 맞아 서비스업으로 이직하고 싶을 수 있다. 이민자 가정의 자녀는 부모 나라의 정체성을 지닌 동시에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지닌다. 그러나 현행 비자와 국적 체계는 이들의 삶의 확장을 허용하지 않는다. 제도의 한계는 종종 이민자를 불법적인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이민자들은 단지 더 나은 삶을 찾아 터전을 옮기고, 그곳에서 자신의 삶을 성실히 영위하며, 이를 통해 그곳의 발전에 기여했을 뿐인데, 통계에 ‘불법 체류자’로 분류되는 순간 그들 앞에 놓인 운명은 차별과 단속과 추방이다.
삶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한 이민 정책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트럼프의 이민자 단속이 단적인 예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오랜 기간 지역에 터 잡고 살아온 사람들이 한순간에 범죄자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트럼프가 간과한 건 이들이 지역경제를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3년 기준 미국 노동시장에는 약 3천만명의 이주민 근로자가 있으며, 그중 합법적인 체류 자격이 없는 사람이 1200만명이다. 미국 농업 분야 노동자의 15%, 건설업 분야의 14%, 외식업의 8%가 미등록 이주민인데 이들을 다 쫓아내면 경제가 버틸 수 없다. 트럼프가 뒤늦게 농장과 음식점을 단속 대상에서 뺐다지만, 그사이 벌어진 무자비한 단속과 반단속 시위, 군대 파견은 이민자에 대한 낙인과 극심한 갈등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초래했다.
우리나라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사업은 어떤가. 우리 출생률을 올리기 위해 수입해 오자는 외국인들은 노동력이기에 앞서 사람이다. 싼값에 들여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도구가 아니기에, 적절한 근로환경을 보장해주고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 시범사업을 주도한 서울시가 저임금 모델은 포기하고 장기적인 사회통합 방안을 고안하겠다고 하니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이민자를 통계와 제도에 가두지 않고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지닌 사람으로 대한다면 이민 정책의 실패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이민자들과, 그들과 이웃할 내국인들을 모두 이롭게 하는 정책은 삶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온다. 새 정부가 할 일이 많겠지만, 과거의 실패를 거울 삼아 제대로 된 이민 정책을 만드는 데도 신경을 써주길 바란다.
-한겨레신문, 2025.6.17. 기사 <트럼프가 간과한 것…이민 정책이 실패하는 이유> 중에서
“사람은 통계로 간단히 분류하기엔 너무 큰 존재다.”
“이민자 가정의 자녀는 부모 나라의 정체성을 지닌 동시에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지닌다.”
“제도의 한계는 종종 이민자를 불법적인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삶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한 이민 정책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우리 출생률을 올리기 위해 수입해 오자는 외국인들은 노동력이기에 앞서 사람이다."
"싼값에 들여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도구가 아니기에, 적절한 근로환경을 보장해주고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
"이민자를 통계와 제도에 가두지 않고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지닌 사람으로 대한다면 이민 정책의 실패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이민자들과, 그들과 이웃할 내국인들을 모두 이롭게 하는 정책은 삶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온다."
사람은 무엇인가.
값싼 노동력, 쓰다 버리는 도구, 그 이상의 무엇일 수 있는가.
사람을 그렇게 대하는 그들은 사람인가. 그들만 사람인가.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인가.
제도가 정책이 사람과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
사람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사회를 바꿀 제도도 정책도 가능할 것이다.
이윤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정치 개혁이며 국가의 성공이기도 하다.
2025. 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