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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와 보편적 가치

by 영진


ㅣ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경주의 불국사, 석굴암, 해인사 장경전판, 안동 하회마을 등이 떠오르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의 등재 기준은 이렇다고 한다.


세계 인류가 정말 기억해야 할 만한 걸작들, 어떤 중요한 역사적 순간 속에 딱 등장하는 포인트가 되는 건물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보여주고 있는 창의성을 가진 걸작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보편적 가치’이다. 우리 인류가 함께 누릴 수 있는 보편적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는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우리의’ 세계 문화유산이니 그래야 한다는 것이겠다.



ㅣ군함도의 진실


2015년 7월 5일 일본이 ‘군함도’(하시마)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그리고 당시 미국 뉴욕의 타임스퀘어에 ‘군함도의 진실’을 알리는 광고가 올라왔다. 타임스퀘어에 하루 1천회, 1주일간 약 7천회 노출되었던 ‘군함도의 진실’은 무엇인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군함도가 등재될 때 유네스코의 권고 사항이 하나 있었다. 군함도의 전체 역사를 등재하라는 전제 조건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때 등재할 때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 시대의 산업혁명 유산이라고 시기를 한정 지어서 올렸는데, 유네스코에서는 그건 안 된다. 전체 역사를 올려야 한다고 권고했다는 것이다.


그 권고 사항을 이행하겠다며 일본은 다음의 화답을 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의사에 반해 동원되어 가혹한 조건 하에서 노역을 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도 징용 정책을 시행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일본은 권고 사항 이행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그리고, 202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일제 강제 동원의 가슴 아픈 역사가 서린 군함도의 역사 왜곡 문제를 국제적 공론장에서 바로잡으려 했던 우리 정부의 시도가 '표결 패배'로 귀결되었다.



ㅣ일본 산업혁명의 빛


군함도에서 일본 가이드들이 특히 자랑하는 것이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다. 일본 최초의 아파트가 군함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1810년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였던 군함도의 운명을 바꿔 놓는 일이 일어난다. 석탄이, 그것도 아주 질 좋은 석탄이 발견된 것이다.


미쯔비시사에서 이 섬을 매입해서 석탄을 채굴하려고 했는데 문제는 굉장히 작은 섬이었다는 것이다. 섬에서 안정적으로 석탄을 채굴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면적을 넓히고 건물을 위로 올린 것이다. 그래서 일본 최초로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가 군함도에 세워진 것이다.


그런 것은 인정할 부분이다. 하지만, 거기서 이야기가 끝나면 안 되는 것이다. 일본 산업혁명의 발전에 그 멋진 빛과 같은 그 부분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아픈 기억의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석탄을 채굴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 강제로 끌려갔던 조선인, 중국인, 여러 외국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다.



ㅣ군함도는 지옥도


군함도 탄광은 지하 1,000m까지 내려간다. 내려가면 갈수록 석탄의 질이 더 좋기 때문에 계속 내려가는 것이다. 하루에 12시간씩 2교대로 채굴이 돌아간다. 심지어 어떨 때는 8시간씩 하루에 두 번씩 16시간 일을 한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일이 끝나질 않는 그런 상황이었다.


게다가 갱도가 굉장히 좁기 때문에 좁은 갱도에 들어갈 수 있는 체구를 가진 어린 학생들이 동원되었다. 위안부를 통해서 어린 소녀들이 가고 있는 모습도 기억하고 있지만 강제 징용의 모습을 통해서 어린 학생들이 동원되는 그런 모습도 여기에 있다.


갱도 내부는 이미 바다 속에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바닷물이 계속 들어온다. 짠 소금물이 계속 들어오면서 피부에 계속 닿아 피부가 완전 짓 물린다. 게다가 열이 40도가 되는 상황에서 화장실이 없으니 분비물 냄새와 가스가 엉겨져 있는 모습은 말 그대로 막장이었다.


그 땅을 미쯔비시사에서 매입했으면 그 땅도 회사의 것이고 징용이 되었어도 노동을 하면 노동의 대가라는 게 있을 것인데, 임금이란 게 있지만 수건값, 신발값, 잠자는 값 이런 식으로 다 떼니까 남는 게 없다. 결국 이 노동이 끝났을 때 돌아갈 여비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그런 참혹한 강제 징용의 모습이 나타난다.


강제 징용 역사는 이게 다가 아니다. 군함도는 극히 일부이고 수십, 수백 배 되는 강제 징용의 역사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제 2의 군함도 단바 망간 광산에 끌려간 강제 징용의 이야기다. 무려 3천여 명이 강제로 동원되었던 것이다.


망간은 건전지의 재료로 쓰이기도 하고 철을 아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중요한 전쟁 물자였다. 그래서 강제로 사람들을 망간 채굴에 동원했는데 거기도 좁으니 앉아서, 엎드려서 채굴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거기서 무려 200kg이나 되는 엄청난 망간 덩어리를 들고 기어 나와야 하는 그런 모습들이 그 광산에서 시행되고 있었다. 문제는 채굴하는 과정에서 바늘 가루와 같은 폐기물들이 바늘 형태의 미세가루가 몸속에 축척이 된다.


그러면서 나오는 병이 진폐증인데 여기에 참여하셨던 많은 분들이 그 진폐증에 시달리다가 돌아가셨다. 바늘 같은 그런 형태라서 폐를 계속 찌르는 것이다. 그 고통이 엄청났을 것이다.


이렇게 고생했던 이들에게 제공되었던 음식은 콩깻묵 밥이라는 것이다. 콩깻묵은 콩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다. 비료로 쓰는 것이다. 여기다 잡곡을 섞어서 만든 밥이다. 그 두 덩이가 하루 식사다. 하루를 버티는 것이다.


이걸 먹지 않으면 죽음밖에 선택할 수 없으니 먹는 것이다. 그 심정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을까 생각이 드는 그런 상황에서 거기보다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바다로 뛰어내린 분들도 있었다고 한다.


군함도에서 죽으나 바다에 빠져 죽으나 죽는 건 매한가지 아니냐 도저히 못 살겠다고 해서 탈출을 시도했던 분들이 계셨는데 대부분 익사하시게 된다. 기적적으로 육지에 닿았다고 해도 결국 또 잡혀서 모진 고문을 당하는 그런 모습들도 있었다.



ㅣ경제 이익에 가린 보편적 가치


중요한 건 일본인들이 이 군함도 이야기를 너무 자랑스럽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자랑스러운 역사 속에 담겨 있는 인권 유린의 현장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군함도를 유네스코에 등재하면 자랑스러운 면도 있지만 부끄러운 면도 분명히 나올 것을 일본도 예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것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시키려고 했던 것은 관광수입으로 엄청난 경제적인 부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군함도는, 하시마는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어떤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2025. 7. 23.




이 글은 아래의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최태성, ‘끝나지 않은 역사 전쟁, 죽음의 섬 군함도’, <사피엔스 스튜디오>


영화 '군함도' 그 생지옥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어린 조선인들이 들어갔던 지하 1000m 생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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