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븐숭이 4·3 유적지에는 위령탑과 기념관이 있다. 그러나 제주의 수많은 위령탑과 기념관에는 문제가 많다.
비극적인 사건으로 덧없이 희생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면서 하나같이 허위허식으로 세워져 4·3 사건의 진정성을 오히려 해치고 있다. 아픔의 유적지는 아픔의 유적지다워야 하는데, 이른바 폴(pole), ‘그놈의 뽈대’를 세워놓은 충혼탑처럼 되어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미안한 이야기들이다.
전쟁과 희생을 기린 유적지와 기념비는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다. 그중 현대건축사에서 명작으로 꼽히는 것을 보면 우리 식의 ‘뽈대’는 거의 없다.
독일 하르부르크(Harburg) 모뉴먼트는 요헨 게르츠(Jochen Gerz)가 설계한 것으로, 12미터의 사각기둥을 세워놓은 뒤 거기에 유대인학살 때의 기억과 추모를 사람들이 새기게 한 다음 해마다 2미터씩 땅으로 묻어 6년 뒤에는 완전히 땅속으로 집어넣었다. 과거사를 극복하는 기억의 낙서였다.
베를린 홀로코스트 모뉴먼트는 아이젠만(Peter Eisenman)의 작품으로, 무덤 모양의 콘크리트 박스 300개로 지형을 만들었다. 워싱턴에 있는 베트남전쟁 기념 모뉴먼트는 마야 린(Maya Linn)이 설계한 것으로, 땅속으로 꺼져들어가는 벽을 세우고 그 비에 죽은 병사들의 이름을 새겨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그 이름과 벽에 비치게 하였다.
수없이 많은 희생을 치른 우리나라에, 수없이 많은 위령탑을 세웠으면서 이런 건축적 사고와 진정성을 보여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후손들에게 낯부끄러운 일이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창비 2021, 68-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