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주의

by 영진

시스템이든 그게 무슨 조건이다. 거기에 많이 지배를 받는다는 것도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걸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걸 우리가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서 우리도 바뀐다.


근데 그걸 바꾸는 건 결국은 또 우리가 바꾸는 것인데 그걸 얘기를 안 하고 그냥 무조건 구조에 대해서 구조주의적으로 그렇다 하고 끝나버리면 그것도 문제다. 환경에 전혀 영향받지 않는 것처럼 ‘나 하기 나름이다’ 그렇게 얘기하는 것도 문제다.


시스템을 조금 넓혀서 그것을 사회라고 보고 아이히만을 개인이라고 봤을 때 파슨스가 이야기하는 역할 개념, 사르트르가 역할 개념 이야기하는 게 둘 다 똑같이 사회의 구조에 영향을 받는 인간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파슨스의 의미에서는 아이히만을 단죄하기 어렵다. 그 사람을 둘러싼 그 시대의 환경에 영향을 받은 인간이기 때문에 사회 구조가 만들어놓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사르트르가 볼 때는 아이히만도 두 측면을 가지고 있다. 캐릭터 마스크로서, 역할로서 한 부분이 있고 동시에 그 본연의 자기도 있다. 본연의 자기에 근거해서 얼마든지 비판하고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어쨌든 아이히만이 이상한 짓 할 때 학살 명령을 내리거나 할 때 그거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이지. 개인의 문제만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런 측면도 있어서 그거는 체제 전체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그런 문제의식이 있을 것 같다.




파슨스 식으로 얘기해도 아이히만이 한 짓들이 있다. 그게 그 사람의 인격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기 것이 들어갔다는 말이고 자기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큰일 날 수도 있고 그러니까.


문제는 파슨스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그게 작동을 하고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한은 그 시절에는 그걸 기능으로 썼다. 사회가 움직이는 그 기능이 좋으냐 나쁘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사회를 유지하고 작동시키는 데 역할을 했다면 그냥 다 통용되는 것이다. 그걸 하느냐 못하느냐가 문제가 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게 전쟁 때 그렇다. 전쟁 때 사람 죽여도 되는 것이다. 일상은 안 되지만. 사회 기능주의다. 가치판단 하는 게 아니다. 구조가 잘 작동하도록 그 안에서 작동을 하고 있으면 괜찮은 것이다. 현실 변론적이다. 그럴 수 있는 기능으로 작동하느냐 못하느냐를 보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이걸 못하면 나쁜 기능이 되는 것이다. 근데 기능이 잘 돌아가면 그게 인간을 죽이든 말든 상관이 없다. 그렇게 된다. 그래서 아도르노는 파슨스를 ‘기능주의’라고 비판한다.



-하영진, '역할과 기능주의', <도시의 무지개> 202-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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