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려고 드는

by 영진

아도르노는 변증법이 실증주의를 무시할 수 없다고 보지만 동시에 실증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사태를 따라가야 하는 입장에서는 실증주의적인 요소가 있다. 그렇지만 실증주의자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사실들, 자료들, 경험 자료들, 감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 여기에 국한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칸트는 좀 복잡하다. 칸트는 그런 것을 얘기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인간의 이성이라는 게 특이해서 그것을 넘어서서까지 자꾸 생각하려고 든다. 그게 거의 필연이다. 생각하려고 드는 것. 신이 뭐 어쩌고 저쩌고. 세계가 무한하냐 안 하냐.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냐. 아니냐.


도저히 답도 없는 건데, 생각하려는 것을 필연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가 이성을 통해서 일정하게 규제해야 한다. 칸트는 이런 입장이었다. 형이상학을 비판도 하고, 형이상학을 어떻게 보면 불가피하다고 또 인정도 하고. 칸트는 이중적인 태도가 있다.


근데 실증주의는 그런 부분은 아예 싹 없애는 것이다. 그 이상에 대해서는 아예 논하는 것부터가 자기들 과제가 아니라고 본다. 예를 들면 잠재적인 것, 이른바 객관적으로 가능한 것, 눈에 잘 안 보인다. 이런 걸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영진, '변증법과 실증주의', <도시의 무지개> 286-287쪽.





도시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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