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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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죽여 보게 되는 것이,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이 바짝 긴장하여 숨 죽여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공포영화라고 한다면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A Quiet Place)는 공포영화로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리 내면’ 공격받는다는, 괴생물체로부터 공격받아 죽는다는, ‘소리 내면 죽는다’는 설정 자체만으로도 성공적으로 보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옆 사람의 소리에 민감해졌고 나 스스로도 소리를 내지 않으려 숨죽여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숨소리조차 괴생물체에게 들릴까 조심스러운 상황에서 소리를 내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일상의 행동들 속에서 무의식 중에 내는 소리들이 있다. 실수로 물건을 떨어트렸을 때 나는 소리, 기쁨과 고통의 감정에 따라 몸이 반응함으로써 몸에서 나는 탄성이나 신음소리, 그런 소리까지 통제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있는 경우에는 ‘소리 내면 죽는’ 위험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거기다 출산을 해야 하는 산모와 갓 태어난 아기까지. 언제 울지 모르는 아기의 울음소리는 죽음을 부르는 소리다.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 상황에 처한 이들의 공포감이 오롯이 전해져 지켜보는 이들의 긴장감도 고조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둘러봐도 상황 설정만으로도 죽음의 공포 분위기를 만드는 데 성공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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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2018년 개봉했다. 위 글은 당시 영화를 보고 남긴 기록 중 일부다.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가 가끔 생각나는 것은 단지 성공한 공포영화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두 가지 사정에서 그런 듯하다.
‘소리 내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은 인류 역사상 통치자들의 소리(말과 글)에 대한 탄압을 연상케 한다. 영화 속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생명체의 ‘소리’에 대한 공격은 가상의 세계이지만, 통치자들의 ‘소리’(말과 글)에 대한 탄압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실재했고 여전히 실재하는 통치 방식이다.
자신과 다른 소리,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소리에 대한 탄압은 언론과 방송 탄압, 역사 왜곡, 지식인 길들이기, 저항하는 국민들 탄압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와 같은 공안 통치는 사회적 약자들을 혐오하면서 공포를 조장하는, 한국인들도 70~80년대 군사정권에 의해 경험한 바 있는 통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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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가끔 생각나는 또 다른 이유는 영화 개봉 당시부터 몇 년간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겪은 탓인지 영화 속 괴생명체가 궁금증을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감독이 미래에 등장할 ‘바이러스’로 인한 괴생명체를 상상하며 영화를 제작한 것은 아닌가라는 것이었다.
물론, 괴생명체는 감독의 창조물이다. 감독은 괴생명체의 제작을 위해 몸 전체가 청각 기관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앵무조개’ 껍질에서 디자인 영감을 얻었으며, “작은 소리에도 몸 전체로 급격한 고통을 느껴 소리의 근원을 파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상상 이상의 튼튼한 구조로 된 두려움과 무력감을 심어주는 생명체”를 창조해 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단 한 번의 일상적인 소음이 바로 죽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세상”, “한 가족이 불안에 떨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처절한 상황”에서 “저들을 파괴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물음과 함께 “소리 내지 않고 일상을 보내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연구했다”라고 감독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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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던 숨 막히는 공포상황을 애버트 가족은 이겨낸다. 발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모래 길을 만들고, 집 마룻바닥에 페인트칠을 해서 나무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했으며, 첫째 딸 ‘레건’이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족 모두 수화를 사용한다. 소리 없이 소통할 수 있는 “수화의 설정”만으로도 생존에 필요한 능력을 이미 갖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시시각각 생겨나는 긴급한 상황에서 서로 소통하기 위해 “특별한 조명 시스템”을 만들었다. 붉은색의 불빛은 반드시 도망가야만 하는 위급한 상황을 알려주는 것이다. 여러 가지 다양한 색깔의 조명을 사용해서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낸 것이다.
전 지구를 휩쓴 대재난 속에서 이 가족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애버트는 농장에서의 생활 노하우를 이용해 정체불명의 존재의 위협보다 한 발짝 앞서 생존 전략을 강구했던 것이다.
애버트 가족이 주로 생활하는 농장의 헛간에는 물이 있고 태양열 발전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애버트는 집의 지하실을 작업실로 개조해 그곳에서 전기를 발전시키기도 하고 CCTV를 통해 정체불명의 존재를 감시하며 가족을 지켜낼 방법을 연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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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대재난 이후의 인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공상이지만 이미 시작된 미래로 보이기도 한다. 환경재앙과 바이러스로 인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생명체가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영화 속 애버트처럼 재난에 대처할 준비를 해나가는 수밖에 없겠다.
환경재앙과 핵폐기물 재앙, 그로부터 출현할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들의 인류에 대한 공격이 먼 미래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인류의 파멸을 늦추기 위해서 지구상의 통치자들은 국민들의 ‘소리’를 탄압할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 슬기로운 주체들이 민주적인 통치구조를 만들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겠다.
2022. 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