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진 Sep 13. 2023

둥글게

둥글게 모여 앉아/ 행복했던 작은 가게가 문 닫자/ 처음 눈물을 보인 너/ 나는 조금 놀라서 어색하게 웃었지/ 혹시 내가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그 사람이/ 너 일지도 몰라서/ 작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사람이/ 힘없는 것을/ 안아 줄 수 있는 사람이     


꽃을 밟지 않으려/ 뒷걸음을 치던 너와 부딪혔어/ 함께 웃음이 나왔어/ 하늘이 투명해서 너도 빛났지/ 혹시 내가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그 사람이/ 너였으면 좋겠어/ 작은 빗방울이/ 세상을 푸르게 하듯이/ 부드러운 것이/ 세상을 강하게 하듯이(이상은, ‘둥글게’)     


가수 이상은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8년이다. 35년이나 지났음에도 아직도 기억이 제법 생생하다. 당시 강변가요제라는 것이 있었고 그 해 여름은 온통 껑충한 키의 이상은이라는 가수가 부르던 ‘담다디 담다디 담다디담 담다디다담다다담~’을 따라 흥얼거렸던 것 같다.     


여름이면 강변에서 펼쳐지던 가요제와 너무나 잘 어울렸던 시원했던 그녀의 이미지와 노래였기에 강한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그 후 그녀는 싱어송라이터가 되어 꾸준히 그녀만의 음악을 선물했다. ‘무지개’의 노랫말처럼 그녀의 음악은 희망을 주는 무지개이자 선물이었다.     


그렇게 늘 세상만 보면/ 세상은 조금 복잡하고 위험하니까/ 너도 조금 복잡해지고 위험해지지/ 그러니 잊지 마/ 따뜻한 추억들과/ 너를 위로해 준 사람들/ 희망을 준 그 모든 것은 무지개/ 흔히 볼 수 없고/ 쉽게는 만날 수 없는 희망/ 그건 선물이지(이상은, ‘무지개’)     


‘둥글게’라는 곡이 2005년에 세상에 나왔으니 15년이 지났다. 많은 예술작품이 그러하듯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에 대한 감상도 달라진다. 그럼에도 그때의 감상이 남아 있는 지점을 만나기도 한다. 사람들과 ‘둥글게 모여 앉아’ 무언가를 했던 기억은 행복했던 것 같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무언가를 함께하는 것이 행복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런 시간을 갖게 되면 행복하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따듯함이 전해진다. ‘따듯한 사람과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다. ‘작은 빗방울이 세상을 푸르게 하듯이 부드러운 것이 세상을 강하게 하듯이’‘작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사람’, ‘힘없는 것을 안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는 필요하다고 여긴다.      


노래를 처음 들었던 때나 15여 년이 지난 지금도 ‘따듯한 사람과 세상’에 대한 생각에서 달라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와 같은 ‘따듯한 사람과 세상’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와 같은 ‘따듯한 사람’만으로 ‘따듯한 세상’은 가능할까라는 의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따듯한 세상의 가능성에 대한 물음과 그에 대한 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와 같은 따듯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따듯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만큼의 따듯한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듯한 사람들이라면 따듯한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지만 따듯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따듯하다고 여긴다.


‘따듯함’에 대한, ‘따듯한 세상’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 있고 그러니 서로 다른 따듯한 세상으로 가는 방식도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따듯한 사람들이 이루어가는 세상은 따듯한 세상일 것이며 그들이 함께하는 것이 이미 존재하는 따듯한 세상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따듯한 사람들이 함께하는 따듯함은 희망을 준다. 쉽게 만날 수 없는 희망. 그건 선물이지.          



2021. 12. 2.


매거진의 이전글 소리 내면 죽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