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가 다수로

by 영진

운동 과정에서 소수가 이 사회를 바꾸려면 바꾸겠다는 의지를 가진 소수가 다수로 변하지 않고는, 양적으로 변하지 않고는, 양적으로 다수가 되지 않고는 질적 전환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소수가 열심히 연구하고 조직하고 투쟁해 봐야 그게 다수로 전환되지 않고는 사회적으로 지배적인 운동으로 변하지 않고는 질적 전환도 안 되는 것이다.


대세를 만들려고 하는 운동은 소수에 머물 수 없고 양적으로도 팽창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뭔가 질적인 전환이 일어난다. 사회적으로 헤게모니를 얻어야 사회가 변하는 것이다.




헤겔의 [정신 현상학]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태아가 엄마 뱃속에서 아홉 달 있다가 태어날 때 그때까지는 양적인 변화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태어나는 것은 질적인 변환이다.


철학도 그렇게 변화한 과정이 있다. 누적된 게 있어야만 그런 질적 변화가 생긴다. 아기가 태어나는 그 순간이 도약이 되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저절로 된다고 하면 어떤 운동을 할 필요가 없다.


아도르노는 데카르트식의 직선적인 사유 과정을 비판한다. 데카르트는 차곡차곡 간다는 얘기를 했는데, 아도르노는 한발 한 발이라는 개념을 ‘계단의 우상’이라고 표현한다. 계단의 우상에 빠져서는 안 된다. 날아갈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영진, '날아갈 줄도 알아야 한다', <도시의 무지개> 308-309쪽.





도시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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