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겨드랑이에서 부유방이 자랐다

by 두밧두중독현상

유난히 가슴이 아파온 어느 날이었다. 원래 pms기간에 가슴과 겨드랑이에서 통증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전과 결이 달랐다. 길을 걷다가도 찌릿한 불쾌한 통증.

유방초음파를 언제 받았더라 최소 3년은 된 것 같은데.

나와 함께 건강염려증을 지병으로 갖고 있는 친구는 당장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독감도 연달아 종류별로 걸리고 요새 몸이 약해진 거 같아 건강검진을 예약해 놨는데 그녀의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이틀 후로 병원을 예약하고 차도가 있길 바랐지만 통증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 심각한 병인 거 같다. 챗gpt와 상담하며 거의 90% 확신을 한 상태였다. ‘유방암이면 어쩌지 보험이 있나‘ ‘우리 애들은 어쩌지‘ ‘수술해야 하나 그 사이 회사는 어떡하지‘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진료실에 들어갔다.

왜 왔냐는 의사 선생님의 물음에 요즈음 증상을 얘기하니 초음파를 보자고 했다.

초음파실에서 의사 선생님은 초음파를 하다가 자꾸 멈춰서 뭔가를 체크했다. ‘종양의 사이즈를 체크하는 것인걸까‘ 긴장의 연속이었다.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끝나고 소견을 듣기 위해 다시 진료실로 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방에는 이상이 없단다. 다행이다. “저 거의 확신하고 왔거든요.” 안도한 내 입은 물어보지도 않은 고백을 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 “겨드랑이에 부유방이 있는 거 알고 계셨나요?” “아 멍울은 예전부터 있었는데 그게 부유방인 줄은 지금 알았어요.” “크기가 꽤 커요.” 보통 10%만 가지고 있다는데 내가 바로 그 10%에 당첨된 것이었다. 통증도 있고 일상생활에서 불편할 테니 수술을 고려해 보라고 권유받았다. 그래 온 김에 겨드랑이 통증과도 안녕하자. 부유방은 유방조직과 동일하여 여기에도 암이 생길 수 있으니 이참에 떼어내 버리자 마음을 먹고 상담실장님과 수술에 대한 상담을 들어갔다. 한참 설명을 듣다가 수면마취해야 한다는 말에 수면마취 안 하면 안 되냐고 물으니 안된다고 하며 이유를 물었다.


나는 수면마취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데 스무 살 재수시절, 기침하다가 피가 나서 위내시경하러 간 노량진의 어느 작은 내과에서 수면내시경을 시도하다 호흡과 맥박수가 떨어져 119 구급차를 타고 중대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하니 그때 약물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지 못하면 수술하기 어렵다고 했다. 중대병원에 기록이 있으려나 10년도 지난 일인데.. 머릿속으로 걱정하며 마저 설명을 듣는데 이번에는 신장, 간, 심장 등 지병이 있냐고 물었다. 아 제가 사실,,, 하며 말을 이었다.


이따금 아니 꽤 자주 심장 쪽 통증이 느껴져 재작년 건강검진 때 심장초음파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 판막이 잘 안 닫힌다나 잘은 모르겠지만 추적관찰하라는 소견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얘기를 하니 상담실장님이 의사 선생님에게 갔다. 그리고 돌아온 후 수술이 안된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이 병원에서는 수술하기 부담스럽다고 퇴짜를 맞은 것이다. “그럼 저는 어디에서 부유방을 제거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그녀가 난처한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한참 진행된 상담은 결국 나의 건강이슈로 초음파 비용만 결제하고 병원을 나섰다.


모처럼 나를 괴롭히던 겨드랑이 멍울과 헤어질 결심을 했는데 아쉬웠다. 대학병원에서는 수술해 주려나 그런데 이거 때문에 대학병원까지 갈 생각을 하니 어쩐지 귀찮아졌다. 물론 이 상태가 좋아서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취라는 부담을 지면서까지 수술하느니 부유방까지 유방이라고 생각하고 초음파 주기적으로 받으며 살면 되지 않을까. 어떻게 부유방까지 사랑하겠어 그냥 참고 사는거지.



내 몸이 미쳤나 봐

내 머리엔 뿔이 돋아 어떡해 멈출지를 몰라


Oh 세상 속 나 혼자 나빠

구해줘 어쩌면 난 괴물이 된지도 몰라

Got no one but you


-어느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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