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차선책

자존심의 대가

by 한신

쭈뼛쭈뼛 대며 돌린 이력서에서 아무런 응답이 오지 않자, 우리는 어느 순간 서로 말없이 그 일을 멈췄다.

아무도 먼저 “이제 그만할까?”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둘 다 알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이력서를 들고 서성이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버거웠다는 걸.


“오늘은 날이 더우니까 좀 더 이따 나가자.”

“내일은 문 연 가게가 더 많을 거야.”


핑계는 늘 새로웠고, 합리화는 점점 능숙해졌다.

우리는 점점 더 집 안에 머물게 됐다.


혜지는 그런 우리를 보며 말없이 참지 않았다.

“왜 안 돌아다녀? 인터넷만 보면 뭐가 나와? 직접 발로 뛰어야지.”


쏘아붙이는 말투는 아니었지만, 우리에게는 따끔했다.

우리를 나무랄 자격이 있었다. 혜지는 우리보다 반년 먼저 호주에 도착해, 가장 험하다고 알려진 농장 지역에서 열매 따기 3개월을 마쳤고, 그 돈으로 지금의 집을 렌트해 쉐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쉐어하우스를 운영하면서도 한인 마트에서 일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와 같이 ‘친구’였지만, 또 학창 시절을 같이 보냈던 ‘여자아이’였기에 우리는 더욱 부끄러웠다.

친구로서도, 남자로서도.


그렇다고 당장 용기가 생기지는 않았다.

우리는 인터넷 서핑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브리즈번 알바’, ‘워홀 구직 성공 후기’, ‘호주 일자리 잘 구하는 법’

한국에서라면 꽤나 활달하고 사교적이던 우리였지만, 영어라는 언어 하나에 철저히 눌려버렸다.

말이 막히자 생각도 막혔고, 스스로를 납작하게 접어 방구석에 넣어버렸다.


부모님에게 손 벌리는 건 싫었다.

고다도, 나도 그건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쯤이면 너 일 구했지?”라는 질문을 받을까 봐 전화도 꺼려졌다.

지금 생각하면, 자존심만 가득하고 용기는 없는 멍청이들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엔, 그 자존심이 마지막 남은 자기 보호막처럼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일자리를 찾겠다는 우리의 첫 시도는 ‘인터뷰 한 번 없이’ 끝났다.

우리는 패배한 채, 각자의 대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다는 원래 워홀 중간쯤에 어학원을 다닐 계획이었지만, 일이 구해지지 않자 순서를 바꾸기로 했다.

남은 종잣돈을 모조리 털어 3개월짜리 어학원에 등록했다.

영어가 늘면 일자리도 더 쉽게 구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너도 같이 다니자.”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 잔고로 3개월 어학원 등록을 하면, 나는 거지가 됐다.

남는 건 수업료 영수증뿐일 거였다.

어학원을 포기하고, 나는 나대로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서서히 호주생활 방구석 전문가가 되어갔다.

일은 하지 않으면서, 일자리에 대한 정보는 누구보다 빠르게 꿰고 있었다.

그건 일종의 자기 위안이었고, 그 와중에도 뭔가를 ‘하고 있다’는 착각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한 게 있었다.

WWOOF – 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

유기농 농장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숙식을 제공받고, 현지인과 함께 지내며 영어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글을 읽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거다.’


나는 아직 젊었고, 일하는 것쯤은 두렵지 않았다.

무언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이 들었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 농장에서 배우는 생존력, 원어민과의 대화—그 모든 키워드가 나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동시에, 어딘가 씁쓸했다.

“이거 완전 호주판 머슴살이잖아.”

그 순수한 프로그램 취지와 달리 새로운 도피처를 찾은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취업 전쟁을 피해온 도피처 안에서도 도망칠 것을 찾던 나였다.


나는 WWOOF 브리즈번 지사를 찾아가 책자를 구입했다.

회원으로 등록되었고, 책자 속엔 수십 곳의 농장 정보와 연락처가 인쇄되어 있었다.

그 연락처 중 하나를 고르면,

그 집에서의 ‘머슴살이’가 시작될 터였다.



사진: UnsplashThom Milkov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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