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취준생

현실의 문 앞에서

by 한신

브리즈번에 도착한 지 2주.

햇살 좋고 바람 좋던 시간은 어느새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하루하루가 선물 같았지만, 이제 슬슬 ‘살아야 한다’는 감각이 밀려왔다. 그동안은 외국의 공기 속에서 현실이 덜 느껴졌는데, 신기하게도 잔고가 줄어들자 풍경도 조금씩 다르게 보였다.


이제 일자리를 찾아야 할 때였다.

워킹홀리데이. 말 그대로 ‘일하며 휴가처럼 지내는 삶’이라 했지만, 우리는 아직 일하지 않았고, 돈은 분명히 줄고 있었다. 고다와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종잣돈이 금방 바닥을 드러낼 거란 걸 알고 있었기에, 조급함은 예상보다 빨리 우리를 덮쳤다.


한국에서도 나는 제대로 된 이력서를 써본 기억이 많지 않았다. 대학교 생활 내내 한 번 했던 인턴이 전부였고, 그 이력서도 대부분은 한글로, 교수님의 조언이나 선배의 예시를 보고 따라 썼던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엔 영어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일을 해왔는지를 영어로 표현해야 했다.


인터넷을 뒤졌다. ‘Working Holiday Resume Sample’, ‘Hospitality CV Australia’ 같은 검색어로. 구글 번역기와 워드 문서를 오가며 몇 줄씩 문장을 완성했다.

“I’m a passionate and reliable worker…”

문장을 쓸수록 뭔가 거짓말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열정적이고 성실한 직원’이라는 말이, 실제로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지도 자신이 없었다.


이력서 인쇄도 문제였다. 프린트 한 장이 아까웠다.

그래서 우리는 신중했다. 출력소에 가서 조심스럽게 수십 장을 뽑고, 그 서류가 구겨지지 않게 가방 속에 반듯하게 넣었다. 그리고 시티로 향했다.


원래의 계획은 하루에 최대한 많은 곳을 돌아보며 이력서를 돌리는 것이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시티 거리를 걷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눈에 띄는 카페, 레스토랑, 서브웨이 매장 앞에서 서로 눈치를 보다가, 결국 “네가 해” “아냐, 네가 먼저 가”를 반복했다. 결국 용기를 내어 들어가면, 나도 고다도 쭈뼛쭈뼛, 말은 더듬고, 목소리는 작고, 손은 땀에 젖었다.


그렇게 돌린 이력서는 일주일 동안 겨우 10장 남짓.

이력서를 낸 가게는 대부분 예의 바르게 “Thanks”라고 했지만, 그 뒤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전화도, 이메일도, 심지어 거절 메시지도 오지 않았다.


혜지는 한인가게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나와 고다는 어디서 나온 자존심이었는지, 한인가게에서는 일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인가게는 보통 호주 최저시급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이 많았고, 우리 둘은 “우린 그래도 진짜 호주에서 일해보자”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서 온 사람끼리 한국어만 쓰며 일하는 게, 뭔가 우리가 꿈꿨던 ‘외국 생활’과는 어긋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 자존심도 점점 무게가 되어 갔다.

‘우리가 이력서를 돌릴 때, 그 영어는 과연 통했을까?’

‘우리 얼굴에 드러난 초조함이, 사장에게는 믿음 부족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그때 우리는 몰랐지만, 단순히 영어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자신 없는 태도, 눈을 제대로 못 마주치는 모습, 그 모든 게 우리를 ‘고용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일주일이 지나자, 마음이 점점 좁아졌다.

“왜 아무 데서도 연락이 없지?”

“이렇게 힘든 건 줄 알았으면 좀 더 준비해 올 걸…”

우린 그렇게, 하나둘씩 스스로를 책망하기 시작했다.

현실이 무섭게 다가오고 있었다.


잔고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우리는 여전히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호주의 거리를 맴돌고 있었다.



사진: UnsplashClaudio Schwa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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