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의 재회
우리는 한국과 필리핀에서 각자 인터넷을 몇 날 며칠 뒤지고 난 끝에 브리즈번에서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시드니나 멜버른은 워낙 한국인도 많고 경쟁도 치열하다는 말이 있었고, 브리즈번은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살기에 적당하며, 무엇보다 날씨가 좋다는 정보들이 내 마음을 끌었다. 고다는 이미 필리핀 세부에서 어학연수를 받고 있었고, 다음 행선지인 시드니행 항공권까지 끊은 상태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의 시드니 도착 날짜에 맞춰 나도 브리즈번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고다는 시드니에서 다시 국내선을 타고 브리즈번으로 넘어오기로 했고, 우리는 그곳, 브리즈번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기 전이었다. 카카오톡도, 공항 와이파이도 없던 시절.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정보는 고다의 비행 편 이름과 도착 시간뿐이었다. 연락이 안 되면 그냥 기다리면 되는 줄 알았다. 단순하고도 순진한 계획이었다.
출국 준비는 처음 겪는 모든 것의 연속이었다. 여권을 처음 만들었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하고 신체검사를 받았다. 심지어 출국 전날까지도 “이게 맞는 절차인가?” 싶은 불안이 따라다녔다. 새벽 비행기를 타러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조금 들뜬 얼굴로, 그러나 속은 비어버린 사람처럼 수속을 밟았다.
그때 나는 진심으로 ‘생존’을 위해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전까지의 영어는 점수였지만, 이제부터의 영어는 호주에서의 밥벌이였고, 문장 하나가 삶이 될 거라는 두려움에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공부하였다.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놀랍도록 맑았다. 습기 없는 공기와 왠지 모르게 느긋해 보이는 사람들의 걸음걸이에 낯선 평온함이 느껴졌다. 나는 안내판을 따라 국내선 터미널로 이동했고, 고다가 탄 비행편의 도착 시간에 맞춰 입국 게이트 앞에 섰다. 그 순간부터, 시간이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이상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비행 편은 도착 예정 시간이 지났지만, 고다는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 10분은 ‘수하물 찾느라 시간이 좀 걸리겠지’ 생각했다. 20분이 지나자 ‘아직 입국 심사 중일지도 몰라’라고 합리화했다. 30분이 지나면서부터는 점점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고, 1시간이 넘어가자, 나는 불안이라는 단어를 체감하기 시작했다.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공항에는 공중전화는 있었지만, 전화번호도, 국제전화 방법도 알지 못했다. 인터넷은 유료였고, 그것마저도 접근이 어려웠다. 나는 그저, 고다가 나오기로 한 입국장 앞에서, 사람들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서 있었다. 마닐라발 시드니행 비행기가 연착되었을 거라는 생각은 당시엔 미처 하지 못했다.
두 시간이 지나고, 세 시간이 지났다. 나는 가방을 발밑에 두고, 벽에 등을 기댄 채, 점점 멍해졌다. 입국장 문이 열릴 때마다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살폈고, 다시 고개를 떨구는 일을 반복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걸어갔고, 나는 그 흐름에서 홀로 벗어나 있었다. 네 시간, 다섯 시간. 공항의 시계는 무심했고, 나는 공항이 이렇게나 조용한 곳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여섯 시간쯤 되었을 때였다.
입국장의 자동문이 다시 한번 열렸고, 낯익은 실루엣 하나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그 순간, 나는 마치 멈춰 있던 필름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고다였다.
머리는 부스스했고, 손에는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들고 있었다.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나를 보자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서로를 껴안았다. 아무 말이 필요 없었다. 여섯 시간이 증명한 감정이었다.
그는 말하길, 마닐라에서 시드니로 오는 비행기가 심하게 연착되었고, 시드니에서 브리즈번으로 가는 비행편도 바뀌는 바람에 연락할 새도 없이 이동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사실 무슨 이유든 상관없었다. 그가 왔다는 사실 하나면 충분했다.
그날 나는, 기다림이라는 것이 얼마나 긴 시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믿음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 찾아온 만남이 얼마나 커다란 선물일 수 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