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낯섦

방을 찾아 헤매며

by 한신

공항을 나섰을 때, 브리즈번의 공기는 햇볕에 달궈진 콘크리트처럼 묘하게 낯설고도 따뜻했다. 우리는 택시도, 셔틀도 없이 무작정 버스를 타고 시티로 향했다. 특별한 목적지도 없었다. 그저 시티라면 뭔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 계획 없는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숙소는 예약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처럼 스마트폰 앱 하나로 방을 고르고 결제까지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인터넷이란 PC방에서나 쓸 수 있는 도구였고, 여행 준비란 곧 직접 눈으로 보고 발로 뛰는 일이었다. 우리 둘 모두, 그런 ‘준비되지 않음’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대의 사람이었다.


시티에 도착하자, 양 옆으로 늘어선 건물들 사이로 가벼운 바람이 불었다. 손에는 무거운 배낭, 어깨는 처음 맞닥뜨린 현실의 무게로 조금씩 굽어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바쁘지 않았고,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버스킹의 선율이 이상하게 평화로웠다. 우리는 그 고요한 거리에서 오히려 더 초조해졌다.


첫 번째 숙소로 향했다. 브리즈번 시티 한가운데 자리한 가장 유명한 호스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운터 너머로 한 여성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고다는 나를 보며 리셉션을 가리켰다. “네가 좀 물어봐.” 고다는 필리핀에서 어학연수를 했음에도, 말문이 막혀버렸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한국에서 문제집과 해설지로만 영어를 배운 나는, 실제 대화가 이렇게 막막한 것일 줄은 몰랐다.


나는 용기를 내어 리셉션으로 다가갔다. “Room… have?”

그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What?”

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We… need room. Today. Two people.”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알아듣지 못한 듯한 표정을 지었고, 그 눈빛은 마치 짜증이나 경멸로 읽혔다. 우리 둘 다 당황했고, 뒤에서 고다가 속삭였다. “쟤, 인종차별하는 거 아냐?” 우리는 잠시 그렇게 생각했다. 외국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불친절’ 앞에서, 스스로의 불안과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외부의 문제로 돌리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녀는 단지 우리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익숙지 않은 억양과 엉성한 문장,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는 하나의 언어가 되지 못하고, 단지 소음으로만 들렸을 것이다. 인종차별은 없었고, 있었던 건 오직 우리 안의 두려움과 경험 부족뿐이었다.


그리고 정말 그 숙소엔 빈방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짐을 들고 길을 나섰다.


해가 점점 기울고 있었다. 어깨끈이 끊어진 내 싸구려 백팩은 더 이상 등을 감싸주지 못했고, 나는 그것을 바닥에 질질 끌며 걷기 시작했다. 브리즈번의 거리는 생각보다 컸고, 호스텔은 생각보다 적었다. 마치 도시 전체가 ‘오늘은 너희에게 방이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던 중, 우리처럼 커다란 배낭을 메고 거리를 헤매는 또 다른 이들을 만났다. 동양인 얼굴에 남자 둘, 여자 하나. 말레이시아에서 왔다는 그들은 우리처럼 방을 찾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다섯 명의 작은 무리가 되었고, 함께 거리를 돌며 호스텔마다 문을 두드렸다.


이상하게도, 그들과 함께 다니는 동안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과 걷는 길은 덜 막막했다. 영어는 여전히 부족했고, 짐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웃음이 조금씩 섞이기 시작했다.


몇 군데를 더 돌아다닌 끝에, 어느 백패커스에서 마침 도미토리 두 자리가 비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둘만 들어갈 수 있었고, 말레이시안 친구들은 다른 숙소를 찾아야 했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눴다. 이름을 물었고, 이메일을 적었고, 사진을 찍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외국인과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나의 첫 외국인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고, 몇 년 뒤 그들 중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가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되었다. 몇 년이 흘러, 사진 속 그들은 아이를 안고 웃고 있었고, 나는 멀리서 그들의 삶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인생이란, 이런 우연의 조각들이 이어져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그날 밤, 우리는 마침내 체크인을 했다. 나의 첫 도미토리 방, 이층 침대에 누워 나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피곤함이 온몸을 덮쳤지만,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떠오른 생각은 이랬다.


이 낯선 도시의 첫날, 참 많은 얼굴과 표정을 만났구나.

그리고 내일은 또 어떤 얼굴을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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