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이질감 속 익숙함

쉐어하우스, 그리고 소주 한 잔

by 한신

호스텔은 계속해서 머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돈이 문제였다. 여행자가 아닌 노동자로 호주 땅을 밟은 우리에게, 매일 밤마다 수십 달러가 빠져나가는 건 감당할 수 없는 사치였다. 우리는 다들 그렇게 한다는, ‘한인 쉐어하우스’를 찾아야 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호주 한인 커뮤니티 게시판을 살펴보는 것. 하지만 막상 체크아웃을 하고 호스텔 문을 나서자, 우리는 곧 막막해졌다. 한국처럼 어디에나 PC방이 있는 게 아니었다. 공공 와이파이도, 스마트폰도 없던 그 시절, 인터넷에 접속하는 일 자체가 큰 모험이었다.


버스정류장 옆 상가를 돌아다니다 겨우 한인 운영의 인터넷 카페를 찾았다. 한인 커뮤니티 게시판을 들여다보던 중, 문득 고다가 중얼거렸다. “혜지도 지금 브리즈번에 있다던데.”


혜지. 중학교 동창. 머리가 늘 단정했고, 말보다 눈으로 먼저 웃던 아이. 졸업 후에도 동창모임으로 자주 만나던 사이라 연락하는 게 어색하지 않은 사이였다. 우리는 그녀의 미니홈피에 접속했고, 다행히도 그녀의 프로필에 호주 번호가 적혀 있었다. 나는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동전을 넣고, 낯선 국가번호를 누르며 손이 살짝 떨렸다. 신호음이 이어지고, 혜지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혜지야. 잘 지내지? 나 지금 고다랑 브리즈번에 있어.”

“어? 너네 브리즈번에 있구나! 지금 어디야?”


쉐어하우스 정보를 물어볼 생각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혜지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그녀는 지금 직접 집을 렌트해 쉐어하우스를 운영 중이었다. 주택 한 채를 빌려 방마다 다른 한국인들에게 나눠주고, 월세를 함께 부담하는 방식이었다. 마침 커플룸 하나가 비어 있다고 했다. 다만 문제는, 그 방엔 더블침대 하나가 전부라는 것.


고다와 내가 한 침대에서 자야 한다는 상황은 좀 우습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우리는 지쳐 있었다. 무거운 가방, 끊어진 어깨끈, 낯선 거리와 언어—그 모든 것을 이겨낼 여유는 이미 바닥나 있었다. 시세를 비교해 보는 건 사치였다. “갈게. 주소 문자로 보내줘.” 그렇게 우린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햇살이 지고, 골목 사이사이로 붉은빛이 번지던 저녁 무렵.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하자 낯익은 얼굴이 우리를 맞았다.


이미 집에는 많은 한국인들이 머물고 있었다. 누군가는 요리를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거실에서 와이파이 신호가 잡히는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우리는 따뜻한 밥을 받았고, “환영해요!”라는 말과 함께 플랫메이트들과 술자리를 시작했다.


내가 한국에서 챙겨 온 소주 한 병을 꺼냈다. 호주에서는 몇 배의 가격에 팔리는 귀한 물건이었다. 우리는 그 소주를 소중히 나눠 마셨고, 금방 병이 바닥났다. 귀한 소주가 바닥나자, 호주선배들은 서민의 술이라며 조리용 와인을 꺼내왔다.


다음 날 엄청난 숙취를 가져온 그 조리용 와인을 밤 새 마시며 호주와 낯선 이들에 대한 경계를 녹여갔다. 고다는 웃으며 어제의 영어 실수를 자조했고, 누군가는 자신이 공사장에서 일하다 다친 무릎을 보여주며 무용담처럼 이야기했다.


그날 밤, 우리는 다시 안락함을 찾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호주까지 와서 또다시 한국 사람들과 모여, 한국어로 말하고, 한국 음식에 기대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 풍경. 이게 내가 원하던 것이었을까? 낯선 세상 속에서 다시 익숙함에 안착해 버린 나는, 과연 이곳에 무언가를 ‘살러’ 온 걸까? 아니면 그저, 피난처를 옮겨온 것뿐일까?


고다와 나는 아무 말 없이 커플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술기운에 이마가 조금 뜨거웠고, 희미한 술냄새가 담요 안을 채웠다.


모든 것이 익숙했지만, 그래서 더 낯설었던 밤.

익숙함에 머물 것인가, 낯섦을 향해 걸어 나설 것인가.

그건 그때도 지금도, 나에게 남겨진 질문이었다.


작가의 이전글3화. 낯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