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지도 못하는 축구 하나가 나를 살려낸 것처럼

행복했던 시절로 회귀하기

by 하안


4년 전, 내가 축구를 시작했던 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3학년. 대한민국에서 고삼으로 사는 건 "1년 눈 딱 감고 참고 사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감히 고삼시절을 행복했다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침자습을 가고, 5시에 학교 수업이 끝나면 석식을 먹고 야간 자습 시작. 학원이 있는 날에는 빵 쪼가리 입에 물고 수업을 들었으며, 학원이 끝나면 12시까지 독서실에서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책상에 박아가며 공부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나의 유일한 일탈이었던 축구.


밤 12시에 몰래 책가방을 싸서 나오면 친구들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방감과 비슷한 형태의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으면 그때 우리의 경기는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동네 산책로에 생긴 작은 풋살장 한편에 책가방을 쌓아두고, 제대로 된 룰도 공을 차는 법도 모르는 애들이 공을 따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죽어라 뛰었다. 그렇게 두 시간을 뛰다 보면 풋살장 라이트가 꺼진다. 모두가 이제는 정말 집에 가야 할 시간임을 안다. 집에 돌아와서 씻고 누우면 3시. 3시간이 지나면 다시 똑같은 하루가 시작되겠지만, 풋살장에서 쿵쾅거리는 심장이 아직 침대 위에서도 똑같이 뛰고 있었다.


나는 대학시절 가장 힘들었을 때, 고삼 때 나를 지켜준 축구를 떠올려 무작정 다시 뛰기 시작했다. 축구를 시작하기 전에는 끼니를 챙겨 먹을 힘조차 나지 않았는데, 축구를 시작하니 2시간을 쉬지 않고 뛰는데도 체력이 남았다.

나의 단출한 인생을 지배하는 견고한 법칙 중에 하나는 불행이 닥치면 행복했던 시절로 회귀하는 것이다. 정상으로 다시 돌아오려는 몸부림이라고 할까. 뭐 엇비슷한 노력의 형태였다. 잘하지도 못하는 축구 하나가 결국에 나를 살려냈던 것처럼.


다시 축구하고 싶다. 죽어라 뛰는 2시간 동안 해방감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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