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학생 오스틴
우리의 첫 수업이 기억난다. 나도 가르치는데 서툴고, 오스틴도 한국어를 못해서 둘 다 초등학교 입학식처럼 덜덜 떨었던 날이. 아직도 그 얘기를 하면 부끄러우면서도 웃음이 난다.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할 때 누가 나에게 한국어를 배우려고 할까?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다. 하지만 오스틴은 내 수업방식을 마음에 들어 했고, 매 수업에 열정을 다해서 가르치고 배웠다. 하나의 방향을 향해서 서로 강하게 하고자 하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작용한다.
오스틴은 미국에서 최면술사로 일하고 있다. 최면술사로 일한다는 말을 처음에 들었을 때는 김현우 같이 최면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을 떠올렸는데 (이상하게 옛날 한국 예능들은 최면으로 전생체험하는 게 많이 나왔다), 그런 최면술사는 아니라고 했다. 예를 들면 담배를 끊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무의식 중에 담배를 끊을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면서 일종의 치료를 해주는 셈이다. 한국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언젠가는 꼭 한국어로 최면하고 싶다고 했다.
이제 곧 취업준비 해보려고.
체념한 듯한 나의 말에 오스틴은 왜? 왜? 왜? 물었다.
첫 번째는 진짜 이유를 묻고자 하는 "왜"
두 번째는 진짜 하고 싶어서 하는지 되묻는 "왜"
세 번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의 "왜"였다.
왜 퇴사를 했는지, 지금 한국어 강사가 잘 맞는 것도 다 알고 있는 오스틴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겠다. 이렇게 잘 맞는 일이 있고, 회사는 너와 맞지 않는데 왜 다시 지옥으로 들어가려고 하느냐고. 서툰 한국어로 "그냥 하지 마~" "선생님해 선생님해"라고 말하는 게 웃기면서도 위로가 되었다.
시간이 점점 흐르다 보니 최면을 당하는 것처럼 오스틴의 한 마디 한 마디가 힘이 되어 정말 인정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일에 지치고 사람에 치여서 퇴사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일하면서 일과 사람으로 치유가 되는 모양이었다. 이상하게 나는 사람으로부터 숨으려고 할수록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그래 최면에 걸려있는 듯하다.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나를 믿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니. 내 진가를 알아보고 아낌없이 칭찬해 주는 사람이 있다니. 행복은 일종의 최면과도 같아서 계속해서 말로 표현해 주어야 무의식 중에 정말 나는 그런 사람이 된다. 내가 나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