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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안 Sep 22. 2022

발맞추어 천천히 걷기

 며칠 전에는 정말 오랜만에 지각을 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장소에 도착해야 마음이 놓이는 버릇이 있는데, 조금 더 일찍 나가보려고 급하게 굴다 차키를 두고 나온 것이 화근이었다. 운전석 문 앞에 서서 주머니를 한참 뒤지고, 결국 집에 다시 다녀왔더니 출발하는 시간이 약속 시간이 되어 있더라. “차를 타는데 차키를 두고 나가는 사람이 어딨냐?” 친구의 핀잔에 전화로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얼굴이 꽤나 따끈거렸다.


 이토록 사소하거나 혹은 크고 급한 일이라 해도, 재촉한다 해서 빨라지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급하게 먹는 밥은 체하기 마련이고, 급하게 달리다 보면 넘어지거나 지쳐버리는 일들도 가득이니까. 넘어진 바닥에 주저앉아서 걸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다가 늦은 후회를 하는 일들도 적지 않았다. 그냥 쭉 걸어오기만 했어도 늦지 않았을 텐데, 최소한 넘어져 무릎이 까지는 일은 없었을 텐데.


 물론 천천히 걷기만 하는 일도 쉽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커다란 보폭을 가진 사람이나 바로 옆을 달려 지나가는 사람들도 가득인 세상이니까. ‘나는 언제쯤 저기까지 가지..’같은 생각을 하다 보면 달리지 않아도 지쳐버리는 일이 많고, 조급한 마음에 발끝에는 힘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다’라고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며 마음이 급해지는 것도 문제다. 다들 맞는 방향으로 뛰어가는 것 같은데, 나는 느린 것도 모자라 이 방향이 맞다는 확신조차 없으니. 신발끈을 고쳐매지도 못한 채로 뛰어나가려다 보니 무릎과 손등은 흉터로 가득하고, 점점 작아지는 나를 따라 보폭도 점점 줄어들기만 하는 느낌. 이대로 멈춰버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     


 며칠 전 친구의 같은 고민에 그런 대답을 했었다. 주변을 보며 조급해질 바에는, 차라리 네 길만 보라고.

사실 그 이야기는 내게 하는 말이었다. 주위의 것들이 자신을 작아지게 한다면, 차라리 보지 않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스스로 고립되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길과 자신을 먼저 보고 살피라는 말. 흉터는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지만,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게 된 후에 만들어도 늦지 않다.


 가장 소중하고 행복했으면 하는 나와, 내가 발맞추어 걸어주자.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니, 이제 내가 있어,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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