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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안 Sep 29. 2022

겨울과 여름의 토론

결국, 계절마다 있었던 좋은 일들.



 해가 갈수록 겨울을 기다리게 된다.

크게 내리는 눈에 발이 푹푹 빠질 정도의, 밖에만 나가면 코가 빨개질 정도의 겨울.


 올해는 특히 그랬다. 갈수록 더워지는 여름의 온도와 갈수록 더위를 못 견디게 되는 몸의 탓도 있겠지만, 날마다 일기예보를 보거나 서늘해지는 저녁의 날씨 하나만으로 웃어보이기도 하며 더욱 실감했다. 나는 거의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겨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젠가의 편지에서는 ‘겨울에는 좋은 일들이 많았다’는 추측을 해 보았었다. 그래서 겨울이 좋은 거라고. 겨울에 있었던 좋은 일들이 반대로 겨울을 ‘좋은 계절’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여름에 좋은 일이 없었다거나 겨울에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닌데. 여름과 겨울이 머릿속에서

토론을 하고 있다.     




겨울의 좋은 일

 사실, ‘좋은 일’ 이라는 게 반드시 큰 경험인 것은 아닌 것이다. 정말 사소한 것들이 기억에 남을 수도 있고, 반대로 꽤나 큰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도 있고. 그만큼이나 기억이라는 것은 참 이상한 작용이다.

 태초에 지퍼가 있었다. 가장 이른 겨울의 좋은 기억. 2001년, 고사리 같은 유치원생의 손으로는 지퍼의 양 끝을 맞추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한 손으로는 지퍼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옷의 반대편 끝을 잡아 채우는 일.

하지만 다행히 태초에는 분홍색 앞치마를 입은 소망반 선생님도 있었다. 그 어려운 지퍼를 2초 만에 지익- 채워 끝까지 올려주시던, 그 당시에는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는 분이었다. 그렇게 집에 가는 시간마다 줄을 서 지퍼를 잠겼던 기억.



여름의 좋은 일

 높은 온도 때문인지, 여름의 기억은 곧잘 휘발된다. 몇 월이었는지, 몇 살이었는지 같은 것들이 조금씩 증발하다가 결국엔 가장 무거운, 감정이라는 것만 남고 나머지는 가물가물해지는 것. 최소한 여름은 내게 그런 계절이다. 아지랑이처럼 느릿하게 떠오르는 계절.

 가장 오래된 여름에는 돗자리가 있었다. 대나무 돗자리.

어머니께서는 여름마다 거실에 대나무 돗자리를 깔아두곤 하셨는데, 별다른 냉방 장치가 없어도 등을 대고 누우면 특유의 시원함과 맨질맨질한 감촉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누워서 숙제를 하고, 수박을 먹거나 그림을 그리던 기억. 그러다 선풍기 바람을 쐬며 낮잠에 빠져들었던 기억.  

                       


다시 겨울의 좋은 일

 처음의 것들은 보통 설렘을 안고 있다. 처음 만난 사람, 처음 먹는 음식, 처음 가는 장소 같은 것들. 사실 언젠가부터는 그 설렘보다는 아는 사람과 아는 곳의 안정감이 더 편해졌지만, 그런 처음의 것들이 마냥 좋았던 때도 분명 있었다.

 1월에 떠난 첫 해외 여행의 목적지는 인도였다. ‘어학 연수’를 목적(이자 핑계)으로 한 학원 주최의 수학 여행이었다. 겨울의 한 가운데에서 여름의 한 가운데로 떠나는 여행이었지만, 태어나 처음 비행기를 타게 된 열 세살에게 그런 것은 하등의 문제가 될 것이 아니었다. 한 일 주일 정도는 설레서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     



그 속여름의 일

 언젠가의 술자리에서 그런 논쟁을 한 적이 있다. “짝사랑은 첫사랑의 범주에 넣을 수 있나?”라는 주제. “첫 연애가 첫사랑이지” 파와 “짝사랑도 당연히 포함이지” 파 사이의 싱거운 논쟁이 이루어졌고, “자신이 첫사랑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첫사랑이다” 라는, 역시 싱거운 결말로 마무리되었던 기억.

 밤을 새던 여행의 설렘은, 사실 8할 정도는 J 때문이었다. 나를 “짝사랑도 당연히 포함이지” 파로 만든 사람, 첫 연애도 처음 좋아했던 사람도 아닌데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곧바로 생각하게 되는 사람.

 우연이었는지, 혹은 선생님의 장난이었는지는 잘 몰라도 나와 그 아이는 서너 명씩의 조 편성을 모두 끝내고 남은 두 아이가 되었다.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주안이는 덤벙거리니까, J가 주안이 잘 챙겨야 한다?” 하시던 선생님의 목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벌써 10년이 넘은 이야기. 내게는 아직도 꿈이나 영화처럼 느껴지지만, 이제서야 그런 생각을 해 본다. J는 괜찮았을까. 어쩌면 너무 불편하고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제는 마냥 행복할 수도 없는 기억.     



또 다시겨울의 좋은 일

 감촉이나 냄새로 기억되는 것들이 있다. 무심코 숨을 들이키다가, 혹은 무언가를 들고 있다가 “어?” 하게 되는 것들, 그리고 곧바로 기억나는 어렴풋한 기억들. 분명 어디선가 느꼈던 건데, 싶은 것들.

 언제부턴가, 겨울마다 교회의 합창 대회를 준비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변성기를 지나며 낮아진 목소리로 항상 베이스 파트를 맡는 아이. 지금과 달리 꽤나 활발했던 그 때는, 네 개의 소리가 합쳐지며 분명한 화음을 만들어낼 때마다 튀어나오는 알 수 없는 울렁거림을 꽤나 좋아했다. 음정이 좋다는 선생님의 칭찬이나 금색 플라스틱으로 만든 트로피를 만지는 느낌이 주는 비슷한 종류의 두근거림도. 

 그 주변의 교회가 주는 냄새와 감촉을 좋아했다. 오래된 계단과 나무로 된 문의 냄새, 반원을 그리고 서서 부르는 성가의 먹먹하면서도 따듯한 느낌. 그 즈음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것 같다. 내가 내는 소리가 옆의 소리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 자그마한 칭찬과 박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  

                 


다시 여름의 좋은 일

 여름이라는 계절에는 특유의 유쾌함이 있다. 모든 것이 차분해지는 겨울과 달리 어디로 튈 지 모르는, 해변의 비치볼이나 수영장 사방으로 튀는 물방울 같은, 그런.

 대학에 들어간 뒤부터는 여름마다 물놀이를 다녔다. 근처의 계곡으로, 바다로, 그리고 수영장으로. 처음 뛰어들어간 차가운 물에 작은 비명을 지르다가, 이내 하나 둘 물을 튀겨가며 수영을 조금씩 해 보다가, 옆 사람에게 물을 잔뜩 튀겨보기도 하다가. 잔뜩 놀아 지치고 조금 그을린 몸을 끌고 나와 고기를 구워 먹고 올챙이배가 나올 정도로 수박을 먹었던 기억. 그리고 볕을 밭아 따듯한 바위에 몸을 얹어 말리던 기억. 어떤 친구들은 그 와중에 사랑을 했고 또 어떤 친구들은 놓고 왔다던 고민을 마저 지우려는 듯 맥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지금은 작아 보이는 것들이 그 때는 왜 그리고 힘들고 크게만 느껴졌는지.

 인생을 4개로 나눈 첫 번째, 그러니까 계절로 말하자면 봄 같던 나이에 우리가 있었다. 청춘이라는 이름을 달고, 서툴고 마냥 새롭기도 한 것들을 여럿 마주하며. 그만큼 아파하거나 허우적대던 일들도 봄이기 때문이었겠다. 여름 오기 전 봄의 끝자락,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계절의 아쉬움을 조금씩 앓고 있었을까.                    




결국계절의 일

 여름과 겨울의 입장을 차분히 되짚어보다 생각한다. 애초에 ‘좋은 계절’이라는 것이 있긴 했던 걸까. 어느 겨울에는 많이도 울었고, 어느 여름에는 한없는 웃음만이 있었다. 겨울에도 사랑이 있었고, 여름에도 사랑으로 밤을 지새던 날이 있었다. 단지 어떤 것은 잊었고 어떤 것은 종종 기억했던 것이다. 누구의 삶이 다를 수 있을까.

 괜히 가슴이 먹먹해지거나 작은 웃음을 짓게 되는 일들을 한참 더 뒤적거리다 또 생각했다. 힘이 될 만한 것들은 조금 남겨두고, 이제는 다가오는 계절에 좋은 것들을 조금씩 심어보자고. 오랜 뒤에 또다른 양분이 될 것들, 그리고 지나다 휘청거릴 때 나를 잡아줄 것들을 만들어두자고. 돌아보면 자주 있었던, 나를 살렸던 일들과 사람들이 고맙다. 누군가는 여전히 사람으로 남아 있고, 또 누군가는 이제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그래도. 그들의 가을 안부가 괜찮길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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