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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안 Sep 29. 2022

서투름

여러 모로 변변치 못했던 사랑 이야기

     

 사랑을 하면 무언가를 쥐여주는 게 그렇게 좋았다.

선물이라기보단, 그냥 그 사람의 손에 사탕 하나, 꽃 한 송이라도 쥐여주는 것. 내가 당신을 위해 준비한 것을 당신이 들고 웃어주는 게 그리도 좋아서, 당신을 만나러 갈 때마다 꼭 무언가 하나라도 챙기는 것이 버릇 같기도 했다.     


 그 마음은 마트 입구에 즐비한 간식거리가 되거나 두 손으로 들기도 힘들어 차라리 안고 가야 했던 커다란 인형이 되기도 했다. 들고 가는 것들이 슬픈 당신의 웃음이 되거나, 지친 당신에게 힘이 될 것을 생각하면 가벼웠던 지갑의 사정이나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 같은 것들도 아무렇지 않았던 기억. 어쩌면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 시선의 빈자리를 보이는 것으로 채우고 싶었던 욕심이었겠다. 어쨌든 당신은 주로 그 선물들을 고마워했고, 나는 매번 그 정도면 충분하다며 가볍게 돌아가는 발걸음을 행복해했다.          


( 내가 준 물건을 잡고 있는 당신의 흰 손을 좋아했다. 작은 손으로 꼼지락거리며 사탕의 껍질을 벗기거나, “튤립은 색깔마다 꽃말이 다르다면서요?” 하고 물으며 얇고 검은 사기 꽃병에 물을 채우던, 그 손. 언젠가는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바람에 “어쩌면 당신의 손으로부터 시작됐던 것 같아, 사랑이라는 게.” 하는 말을 내뱉기도 했었는데.

 작고 흰 손으로부터 시작된 사랑은 점점 모든 곳으로 퍼져나갔다. 당신의 여린 어깨로, 입술로, 그리고 진한 갈색의 머리카락으로. 나중의 언젠가 당신이 선 곳의 공기마저 사랑한다는 고백을 했던 것을 보면, 그 때의 나는 정말 사랑이라는 것을 해 보긴 한 모양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서툰 사랑이라는 것은 대부분 영원을 담보하지 못하고, 나와 당신의 경우에서 그 ‘서툰 사랑’은 나의 역할이었다. 마음을 따라 점점 커지는 선물들을 당신은 부담스러워했고, 차오르는 감정이 서툴었던 나는 그것을 매번 더 큰 선물에 담아내야 했다. 그게 아니면 터져버릴 것 같아서, 그렇게 하면 당신도 마냥 좋아해줄 거라는 생각에.

 점점 어색한 웃음을 짓던 당신의 입술은 결국 이별이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내가 생각한 사랑이 당신의 사랑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고. 그동안의 선물은 필요하면 돌려주겠노라고.


 “그래, 알았어. 미안했어. 잘 가.”

 당신에게 한 마지막 말이 그랬다. 변변치 못하게, 울지도 당신의 마음을 돌려보려 하지도 못하고 겨우 뱉은 말이 그랬다. 끝까지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당신은 그렇게 몸을 돌려 걸었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다.

그토록 선물을 하려 했던 것도, 당신이 선물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던 것도, 이별의 순간까지 억지로 웃음을 보였던 것도 그랬다. 전부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서, 드러내는 게 그리 어려워서. 고작 하는 표현이라는 게 선물이었던 거였다. 그렇게 당신을 보내고 나서야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이 뭐 얼마나 대단한 거라고 그랬을까. 매번 우물거리며 “사랑해”, 겨우 세 글자를 꺼내지도 못하고.


 사랑은 무거운 것이지만, 종종 한없이 가볍기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이제서야 되뇌인다. 사랑이 있다면 그 실체가 보이지 않아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어야 했는데. 단단한 껍질 속에서 편안하지 말고, 뛰쳐나가 당신에게 속의 여린 것들을 내보이기도 했어야 했는데.

 사랑은 가벼운 용기여야 한다고, 용기 없던 그 겨울의 내게 멀리서 말해 본다. 너무 무겁게 보지 말고, 너무 걱정스럽게만 보지 말고, 보이지 않아 무서운 사랑을 말해 보라고. 그거, 나중에 보면 결국 사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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