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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환 Sep 13. 2021

머리말(마지막 정치검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22년 20대 대선을 6개월도 남겨 놓지 않은 현재(2021년 9월)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임기를 2021년 3월 임기를 4개월 정도 남겨 놓고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검찰총장직을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제1야당이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그의 정치적 역량이나 대선 승리 가능성은 차치하고 일단 검찰총장을 끝내고 몇 개월이 지난 뒤 바로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것은 매우 비정상적인 일이다.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가장 요구되는 자리에 있다 나와 정치를 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하기 쉽지 않다.

 윤 전 총장을 지지하는 사람은 그가 정치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정권이 윤 전 총장을 탄압했고 정치를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검찰총장에서 정치로 직행하는 것은 몰염치하다고 말하고 있다. 과거 고위직 검사 출신, 좀 더 넓게 보면 법조인 출신들이 정치권으로 향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지만 윤 전 총장과 같은 경로를 밟은 적은 없었다.     

 원론적으로 봤을 때 정치과 검찰은 멀면 멀수록 바람직하다. 정치 권력을 가졌거나 가졌었던 사람들은 불미스러운 일로 검찰의 수사를 받지 않아야 한다. 또 정치 권력은 지위고하, 권력의 유무에 상관없이 수사를 하는 검찰을 건드리면 안 된다. 반대로 검찰도 정치에서 멀어져야 한다. 검찰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순간 수사는 정당성을 잃을 수 있다. 검찰이 정치 권력의 충실한 하수인이 되면 여러 가지 문제를 낳았다. 불행하게도 한국에서 정치와 검찰은 멀지 않았다. 경위가 어떻게 됐던 2022년 대선 1년 전까지 검찰총장이었던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갈 길이 여전히 멀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검찰은 2019년 8월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 순간부터 정치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윤 전 총장이 사퇴할 때까지 검찰은 사실상 제1야당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윤 전 총장을 희망으로 봤다. 윤 전 총장은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을 차례로 수렁으로 넣었지만, 보수 진영은 문재인 정부와 대립한 그의 이력을 더 중시하는 듯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핵심으로 불렸던 사람들에게서도 “악마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며 윤 전 총장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권에 대한 검찰의 견제는 정치권의 견제보다 훨씬 위력이 크다. 정치권은 기껏해야 말로 정권을 견제한다. 검찰은 사람을 구속하고, 전과자로 만들 수 있다. 특정인이나 특정 정치 세력을 도덕적으로 파탄 낼 수 있다. 이는 곧 사회적·정치적 생명을 마감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윤 전 총장은 정치를 시작한 이후 고발사주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 대상이 됐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언제, 무슨 계기로 정치에 뜻을 뒀는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윤 전 총장은 과연 검찰에 속한 공직자 신분일 때도 정치에 뜻을 두고 정치 행위를 한 것일까? 아니면 그는 수사를 했을 뿐인데 정치로 끌려 들어오게 된 것일까? 알려진 사실을 바탕으로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윤 전 총장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본격적으로 수사하면서 정권과 맞서기 시작했다. 이 수사의 계기, 경과 등을 추적하는 것은 윤 전 총장이 정치 행위를 했는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누구나 마찬가지이지만 윤 전 총장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사람이 아니다. 검사 윤석열의 이력, 그와 가까운 사람들, 그가 경력을 축적한 조직의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면 조 전 장관의 사건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미리 결론을 말한다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철저하게 과거 검찰에서 특수통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의 행동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특수통들은 거악 척결의 본산이자 정치검찰의 온상이라는 평가를 동시에 들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구성했던 사람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대검 중수부 폐지론이 들끓었고, 결국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 대검 중수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윤 전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시절 지휘했던 수사 대부분에는 과거 중수부 방식이 그대로 묻어난다. 이 수사 방식은 문재인 정부 초에 주로 했던 적폐수사에서도 엿볼 수 있고, 조국 사태 전 있었던 살아있는 권력 수사에서도 드러난다. 서울중앙지검은 문재인 정부 출범 6개월 만에 살아있는 권력인 전병헌 정무수석 수사에 착수했고,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을 다루는 방식은 이 수사에서 모든 단초를 볼 수 있었다. 그 수사 방식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까지 이어진다. 윤 전 총장은 갑자기 변하지 않았다. 해오던 대로 했는데 수사 대상이 조 전 장관이 되면서 세상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것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검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검찰 제도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검찰 제도는 매우 특이하다. 여러 가지 원인이 겹치면서 다른 나라 검찰에 비해 많은 권한이 갖게 됐고, 직접 수사권을 가짐으로써 사회적으로 이목을 집중 받는 사건을 대부분 직접 수사했다. 이러한 검찰 제도는 제국주의 시절 일본 검찰에서부터 볼 수 있다. 직접 수사권은 특수통이 생겨난 기원이 됐다. 사회적으로 이목을 끌고, 중요한 인물을 다루는 사건은 정치성을 띨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만의 현상은 아니다. 우리나라 검찰은 1987년 민주화 이후 군과 정보기관을 밀어내고 최고의 권력으로 자리했고, 정치권의 최고 인재풀로도 자리 잡았다. 이는 우리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검찰의 정치성은 더 강화됐고, 우리 검찰 제도의 원형이 되는 일본 검찰보다 우리나라 검찰은 훨씬 정치적인 존재가 됐다.

 검찰의 정치적 편향과 지나친 정치성, 권한의 확대는 문제가 됐다. 10년 이상 몸집 불리기만 하고 힘을 키운 검찰에 견제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특검 제도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일부 사건에 특검이 도입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검찰개혁이 논의됐다. 특검을 제도화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고비처) 설립 등이 제기됐다. 그러나 검찰은 정권에 저항했고,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 연루된 2002년 대선 자금 관련 수사로 검찰개혁은 자초하고 만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대검 중수부 폐지 등 검찰개혁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보수 정권에서는 전반적으로 검사들이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검찰개혁은 상대적으로 뒷전이었다. 이 시기에는 정권과 검찰의 위험한 거래도 다시 시작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다시 검찰개혁이 화두가 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찍혔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발탁하면서 검찰의 주류가 바뀌었다. 정권 초기에 정의로운 사람들로 검찰은 교체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생각보다 제도 개혁은 늦어졌다. 문재인 정부 2년차가 지나가면서 검찰개혁은 순위가 뒤로 밀린 듯했다. 여당 의원들이나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우선순위로 거론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법무부 장관, 윤석열 검찰총장으로 드림팀을 구성해 검찰개혁을 완성하려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일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조국 사태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루고 나서야 다시 검찰개혁은 핵심 과제가 됐다. 어쨌든 이 제도개혁은 검찰 제도의 정치성을 제거하는 데 효과가 있었다. 대체되는 제도가 안착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다.

      

 이 책의 1차적 목적은 문재인 정부 검찰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이해다. 책은 크게 3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와 2장에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이 수사한 주요 사건을 다룬다. 일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이 지휘한 사건이 대부분이다. 시간 순서 상 1장은 정권 초기의 적폐 수사, 2장은 살아있는 권력 수사로 구분한다. 1장 사건들이 모두 끝나고 2장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조국 사건 전 문재인 정부 검찰에서는 적폐 수사와 살아있는 권력 수사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검찰의 주류는 바뀌었지만, 오히려 수사 방식은 과거로 돌아가고 있었다. 3장에서는 조국 사건 이후 정권과 검찰 또는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 양상을 우선 다룬다. 이 때 검찰은 확실히 정치에서 중요한 행위자(actor)가 됐다. 3장에서는 조국 사태 이후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갈등 양상, 검찰개혁 조치 등을 다룬다. 더불어 정권과 검찰의 갈등이 이런 식으로 나타난 원인을 찾아본다. 검찰 수사 자체의 정치적 성격, 검찰의 영향력 확대, 윤석열 전 총장 인맥 부상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시간 순서대로 책이 구성돼 있지 않아 개별 사건을 다룰 때는 제목에 시작 시점을 적었다. 같은 장 내에서 서술된 사건도 먼저 시작됐다고 모두 먼저 끝난 것은 아니다. 시점을 생각하면서 입체적으로 검찰의 행위를 분석해야 하는데 책 구성상의 한계에 양해를 구한다.    

 

 이제 검찰은 과거와 같이 정치적 사건을 모두 다룰 수도 없고, 정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낮아졌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탄생 등으로 검찰은 다른 기관으로부터 견제도 받게 됐다. 이변이 없는 한 더 이상 정치검찰은 나타나기 어렵게 제도는 바뀌었다. 이 제도 개혁 전 검찰은 역설적으로 마지막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 책이 사라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전성기를 누렸던 정치검찰의 기록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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