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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환 Sep 13. 2021

#2. 변창훈의 비극(2017년 11월)

 재편된 검찰의 첫 번째 과제는 국정과제 1호인 적폐청산이었다. 청와대도 다소 무리하게 보일 수 있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임명 이유에 대해 국정농단 관련 후속 수사와 공소 유지가 중요하다는 이유를 든 바 있었다. 윤 지검장은 정권과 여론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취임 직후 적폐청산 수사를 해 나간다. 박근혜 정부 시절 벌어진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있는 각종 비리는 물론 이명박 정부 시절의 일까지 수사 대상이 됐다. 국가정보원, 군 등이 저지른 부적절한 행위와 불법 사찰은 주요 수사 대상이 됐다. 지나친 적폐몰이라는 야당과 보수 언론의 지적이 계속 나왔지만, 소수의 목소리였을 뿐이었다. 적폐 수사는 정의였고, 검찰이 하는 일은 다 옳아 보였다.     

 적폐 수사가 계속되는 가운데 2017년 11월 국정원 댓글 사건 관련 수사를 받던 한 현직 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진다. 순항하던 윤석열호에게 첫 번째 고비가 될 수 있는 사건이었다. 피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여론이 바뀌어 수사 동력에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심한 경우 책임져야 될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 더구나 이번에는 극단적 선택을 한 피의자가 현직 검사였다. 여러 가지로 민감한 일이었다. 당시 피의자는 윤석열 지검장과 사법연수원 23기 동기였던 변창훈 검사였다. 변 검사는 2013년 윤 지검장이 국정원 댓글 사건팀장으로 수사를 할 때 당시 국정원에 파견된 검사였다. 국정원장 법률보좌관이 직책이었다. 23기 중 윤석열이 특수통의 적자였다만, 변창훈의 공안통의 선두주자였다. 국정원 파견 검사는 공안통 검사들에게 좋은 자리였다. 대공수사권을 가지고 있는 국정원은 검찰 공안 라인과 주로 일을 같이 한다. 국정원의 수사를 검찰이 지휘하는데 법률보좌관은 중간에서 양 쪽을 조율하는 인물이다. 박근혜 정부 때까지 국정원은 존안 자료라고 하는 공무원의 인사 자료를 만드는 기능이 있었다. 국정원에 파견돼 있으면 대통령의 1차 인사 자료가 되는 존안 자료에 좋은 기록을 남길 가능성이 높았다.     

 2013년 국정원 댓글 수사 당시 윤 지검장은 공격수였고 변 검사는 수비수였다. 수사팀의 강도 높은 수사에 남재준 국정원장을 보좌해 이를 최선두에서 방어하던 사람들도 검사였던 것이다. 당시 국정원에는 3명의 검사가 있었다. 법률보좌관 변창훈 검사 외에 평검사 파견자인 이제영 검사, 그리고 장호중 감찰실장이 있었다. 국정원 감찰실장은 국정원 출신들이 보통 맡는 자리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대대적인 국정원 개혁을 위해 감찰실장을 외부에서 뽑았다.그리고 현직 검사였던 장호중 검사가 선발됐다. 국정원 감찰실장은 내부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상당한 요직으로 평가된다. 검찰 출신이 장 실장도 업무상 직접 관련이 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댓글 수사의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동원된 것으로 나중에 드러나게 된다.     

 앞서 서술했듯이 2013년 국정원 댓글 수사 한창이던 당시 한 언론을 통해 ‘채동욱 혼외자 사건’이 터진다. 이 사건은 댓글 수사에 대한 국정원의 반격이었다. 이로 인해 채 총장이 물러나고 2주 정도 지난 후 윤석열 팀장도 직무배제된다. 윤석열 팀장은 2013년 10월 국정원 직원들을 원장에게 통보하지 않고 체포해 국정원직원법을 위반했다는 논란을 빚었다. 이는 윤 팀장의 직무배제 사유가 됐다. 윤 팀장은 자신을 팀장으로 임명한 채 총장이 물러난 뒤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고위직으로부터 많은 견제를 받았다. 당시 관련자들에 따르면 조 지검장은 채 총장이 재직하던 시절만 해도 총장이 직접 꾸린 댓글 수사팀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윤 팀장은 채 총장이 물러난 뒤 수사를 지휘하던 조 지검장을 설득하다 안 되자 보고 없이 수사 확대를 위해 독단적으로 국정원 직원들을 전격 체포하게 된다. 국정원은 직원들의 체포가 불법이었다고 주장했다. 법 상 정보기관의 직원을 체포할 때는 국정원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아마 정보기관의 힘이 셀 때 수사기관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취지로 만들어진 법 조항으로 생각된다. 국정원은 이 조항을 근거로 불법 체포를 주장한다. 검찰 지휘부는 국정원의 주장을 수용한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윤석열 수사팀장을 직무배제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등 정치 권력의 작용이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윤석열 수사팀장은 국정원이 반발할 수 있는 빌미를 줬고, 국정원은 허점을 파고들어 윤석열 제거에 성공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법률 전문가인 국정원 파견 검사들의 역할이 있었다.     

 윤석열 수사팀장의 직무배제 이후 국정원 수사는 축소되는 분위기였다.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는 수순을 밟았다. 윤 팀장은 고검 검사로 밀려나게 된다. 반면 수비수였던 국정원 파견 검사들은 잘 나갔다. 장호중 실장은 2015년 검찰로 복귀해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변창훈 검사는 또 다른 공안통의 요직인 대검찰청 공안기획관을 거쳐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로 영전해 검사장 승진을 눈앞에 두게 된다. 이제영 검사는 국정원 근무를 마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제사법재판소(ICC) 파견검사로 일하게 된다. 2017년 8월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 이뤄진 검찰 인사에서 장호중 검사장은 부산지검장으로 발령받고, 이제영 검사는 의정부지검 형사5부장(특수, 공안 담당)으로 발령을 받는다. 이때까지 이들은 청와대에서 소위 '찍힌 인사'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과거를 청와대나 법무부에서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남재준 국정원장의 법률보좌관으로 이력이 확실했던 변창훈 검사만 검사장 승진에 실패하고 고검 검사로 가게 된다. 박근혜 정부에서 동기 변창훈과 윤석열의 희비가 엇갈렸는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입장이 반대가 됐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부임한 이후 국정원 수사팀이 꾸려진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정치 공작 전반을 수사하기 위한 팀이었다. 이 과정에서 정보기관의 부적절한 행위가 다수 드러나게 된다. 국정원과 인연이 있었던 검사들도 수사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윤석열 댓글 수사팀장에 맞선 수비수였던 장호중, 변창훈, 이제영 등 세 명의 검사도 수사 대상이 됐다. 이들은 국정원 댓글 수사팀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할 때 댓글 작업을 한 심리전단 사무실이 아닌 가짜 사무실로 안내해 수사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압수수색을 받았다. 다소 생소한 혐의였다. 부적절한 정치 공작이 아니라 방어적인 행위였기 때문이다.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댓글 작업을 지시하고, 민간인을 불법 사찰하고 입막음을 위해 국정원의 공작비를 사용한 다른 수사 대상 행위와는 성격이 달라 보였다. 적용된 혐의는 증거인멸교사와 공무집행방해 등이었다. 국정원 사건에 관련된 다른 인사들이 국정원법 위반이나 직권남용 등의 혐의를 받은 것을 생각한다면 범죄 행위의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대적으로 가볍게 볼 수도 있는 행위였지만, 검찰은 이들 검사 3명에 대해 모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변창훈 검사는 법원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피의자의 극단적 선택이 있으면 바로 나오는 게 검찰의 과잉수사 의혹이다. 현직 검사가 구속의 위기에서 목숨을 끊자 3명에게 다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게 맞았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실제 검찰 내부에서도 3명을 모두 구속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검찰 수사 관행 상 가장 높은 사람 1명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었다는 것이다. 실제 이 사건 논의 과정에서도 최상급자인 장호중 검사장에게만 영장을 청구하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문무일 검찰총장도 이 같은 의견을 제시했지만, 윤 지검장이 일괄 구속을 주장했고 대검은 전국 고·지검장 의견 수렴 절차까지 거쳤다고 한다. 전원 구속을 주장한 윤 지검장이 승리했고 모두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당시 3명 모두 구속 필요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1명에게만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법원은 투신한 변창훈 검사를 제외한 장호중, 이제영 검사에게 모두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이후 재판에서 유죄가 최종 확정됐다. 당시 구속영장 청구 결정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불구속 수사 원칙과 검찰의 수사 관행에 맞지 않았다는 반론도 가능했다. 증거인멸이나 도망의 염려가 없는 피의자라면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다. 나중에 범죄가 인정된다면 법원의 판결에 의해 수감 절차를 밟으면 된다. 피의자 3명이 입을 맞추거나 공동으로 증거인멸을 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1명 정도를 구속 수사해 이들을 분리하는 게 검찰 수사 관행이었다. 그렇게 하면 증거인멸 가능성이 현저하게 줄어든다고 검찰은 판단해 왔었다.     

 이 사건에서 또 고려해야 할 점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보복수사 의혹이다. 2013년 댓글 수사 당시 윤석열 수사팀장은 국정원의 방어과 반격으로 곤경에 처했었다. 그는 2017년 지검장이 되자마자 재수사를 지휘했다. 당시 윤 지검장과 정권에 비판적인 검사들 사이에서는 보복수사라는 시각도 없지 않았다. 윤 지검장은 이 수사에 사심이 개입된 바는 없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윤 지검장은 2019년 7월 검찰총장에 지명 받은 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와 관련된 질문을 받았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변창훈 검사 관련 뉴스를 틀고 질문을 하자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재수사 과정에서) 관련 진술이 나와 부득이하게 수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한 달 간 앓아 누었다고 회상하면서 울먹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윤석열 전 총장의 해명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면 수사의 동기에 대해 여러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윤 전 총장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 수사의 결과로 사람이 죽었다. 검찰 수사의 정석은 사람을 살리는 수사다. 잘못을 바로 잡아 더 건강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수사의 목적이다. 이런 교과서적인 수사의 목적은 잊어버리기 쉽고, 수사 현장에서는 사건을 성립시키고 사람을 잡아야 한다는 목표가 앞서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목표가 지나치게 중시돼 비극이 생겼다. 이런 수사 방식을 지양하는 것이 검찰개혁의 방향이 돼야 한다.     


 윤석열 체제 초기에 일어난 이 사건에서 몇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윤석열 체제 검찰을 이해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외부에 이른바 검찰주의라 알려져 있는 항목이라 할 수 있다. 첫째 구속 신봉 경향이다. 검찰은 피의자가 구속돼야 심리적으로 무너져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진술을 한다고 생각한다. 최종 유죄 판결보다 수사 단계에서의 구속을 더 중시하는 검사들도 많다. 구속 수사 신봉은 특수통 검사들에게 더 심하게 나타난다. 윤석열 체제 서울중앙지검이 아니었으면 과연 이 사건과 관련된 3명의 검사에게 모두 구속영장을 청구했을지는 의문이다. 둘째, 증거인멸 행위에 대한 엄벌이다. 앞으로 서술할 여러 사건에서도 검찰은 최종 책임자가 아닌 실무자급을 모조리 구속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사건에서는 실무자급의 범죄가 증거인멸로 아예 명시된다. 검찰이 수사하는 최종 목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수사 과정을 방해하는 증거인멸 행위를 특별히 엄벌한다. 증거인멸은 검찰 입장에서는 분노할 일이지만, 피의자 입장에서는 방어권 행사다. 특수통 검사들은 과거부터 방어권 행사를 수사방해로 용납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셋째, 복수 인사에 대한 동시 구속영장 청구다. 이는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을 막기 위한 검찰의 수사 기법 중 하나다. 역시 특수통들이 더 잘 쓰는 전략이다. 법원은 언론에 보도된 사건에서 여러 명의 영장을 모두 기각하는 것이 부담된다. 앞으로 보게 될 여러 사건에서 검찰은 이 방법을 자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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