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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환 Sep 13. 2021

#3. 권력기관 청산(2017년 11월)

최강검찰의 탄생

 문재인 정부 초기 검찰은 국정농단 후속 수사, 즉 적폐청산에 주력했다고 말한 바 있다. 계속되는 적폐 수사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6개월 정도가 지나면서 야당을 중심으로 적폐청산 피로감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문무일 검찰총장이 2017년 12월에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주요 적폐수사를 연내에 마무리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의 생각은 달랐다. 청와대도 서울중앙지검의 손을 들어주는 듯 한 분위기를 풍겼다. 결국 적폐청산 수사는 문재인 정부 2, 3년차까지 상당 기간 더 이어진다. 서울중앙지검의 뜻이 관철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18년 남북관계 개선 등으로 여론의 관심이 넘어가면서 검찰은 잠시 잊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적폐청산 후속 수사는 계속 됐다. 적폐 수사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2019년 7월 총장이 되기 전까지 꾸준히 이어진다. 이 사이 이뤄진 적폐 수사는 과거 검찰의 라이벌 권력기관들에게 수모를 안겼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가정보원장과 경찰청장을 했던 인사들에게 줄줄이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사법부도 수사 대상이 된다. 전 정권에서 잘나갔던 군 쪽 인사들도 수사를 받았다. 과거에는 검찰보다 힘이 셌고 지금도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기관들이었다. 적폐청산 수사의 결과 검찰은 최강 권력기관으로 거듭나게 된다.     

 윤석열 지검장 부임 이후 서울중앙지검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 추가 수사를 한다. 그 결과 박 전 대통령에게는 여러 혐의가 추가됐다. 추가된 혐의는 2016년 새누리당 국회의원 공천 과정에 불법으로 개입한 혐의와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였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됐는데, 2018년 1월과 2월 혐의가 추가돼 기소된다. 국정원 특활비 36억 5000만 원을 상납받고, 2016년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서 이른바 비박(비박근혜) 후보를 찍어내기 위한 작업을 총지시한 혐의로 추가 기소된 것이다. 이후 재판에 넘겨져 공천개입 혐의에 대해서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됐고, 특활비 수수 혐의는 국정농단 사건과 병합돼 징역 20년이 선고된다.     

 국정농단 후속 수사를 통해 국정원과 경찰 전 고위직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먼저 국정원 특활비 상납 사건은 박근혜 정부 국정원장들을 모두 감옥으로 보냈다.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전 국정원장에게 모두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혐의를 시인한 이병호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만 기각됐다. 나중에 이병호 전 원장도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되면서 법정구속됐다. 대법원은 이들에게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에서 검찰은 추상과 같은 잣대를 들이댔다. 동시에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국정원장들이 국정원 돈으로 정권 실세들에게 뇌물을 줬다는 법리를 적용했다.

 국정원 특활비 사건으로 최경환 전 새누리당 의원도 구속됐다. 이병기 전 원장으로부터 국정원 특활비 1억 원을 받았는데 검찰은 최 전 의원이 기획재정부 장관이던 시절 이 전 원장으로부터 국정원 예산을 올려달라는 청탁과 함께 대가가 있는 돈을 받았다고 봤다. 즉 뇌물이었다. 최 전 의원은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이 확정됐다. 박 전 대통령과 최 전 의원에게 모두 돈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이병기 전 원장은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관행적으로 정권 실세들에게 일종의 통치자금으로 건넸다는 취지로 법정에서 진술했다. 박 전 대통령과 최 전 의원에게 돈을 준 이유는 똑같았다는 것이다. 이 전 원장의 주장과 달리 검찰은 국정원장이 정권 실세에게 국정원의 실질적 이득을 얻기 위해 건넨 뇌물로 봤다.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악습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이를 뇌물죄까지 적용해 처벌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병호 전 국정원장은 2020년 파기환송심 재판 최후진술을 통해 “세계 어느 문명국가도 이처럼 정보 책임자들이 한꺼번에 재판을 받은 적은 없다”고 안타까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법원은 정치인들에게 건너간 일부 국정원 특활비에 뇌물 성격을 인정했다. 법원은 국정원이 관행적으로 정치권에 통치자금 전달했고, 이들이 개인적 이익을 보기 위한 목적으로 돈을 전달한 것으로 아니라는 취지로 판단했다. 그럼에도 국정원 돈을 청와대와 권력 실세에게 전달한 것은 엄격히 죄를 물을 수밖에 없다고 봤다.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이 다 된 2019년 4월 또 한 명의 박근혜 정부 시절 고위 공직자가 적폐 수사로 구속된다. 검찰은 전직 경찰 수뇌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새누리당 공천 개입 혐의에 연루돼 있다는 혐의를 수사했다. 박 전 대통령이 관련 혐의로 기소된 지 약 1년이 지난 뒤에도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것이다. 정보 경찰들이 비박계 인사들의 동향을 집중적으로 파악하고, 경찰청 정보국 차원에서 총선 관련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전달했다는 혐의를 검찰은 계속 수사했다. 이로 인해 현직 치안감이었던 박기호 전 청와대 치안비서관과 정창배 전 경찰청 정보국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법원은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곧바로 2016년 총선 당시 경찰청 차장이었던 이철성, 경찰청장 강신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다. 이 중 강신명 전 경찰청장에 대해서만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이들에 대한 재판은 현재 진행 중이다. 재판이 장기화되면서 강 전 청장도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도 재판을 받고 있다.
  전직 경찰 고위 간부들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강신명 전 청장 변호인은 재판에서 “경찰청 정보국은 역대 모든 정부에서 대통령 통치행위 보좌를 목적으로 정책 보고를 해왔다”고 밝혔다. 강 전 청장 측은 또 선거 관련 문건을 작성했지만, 그대로 청와대가 활용하지 않았고 선거 결과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기소된 다른 전직 경찰관 변호인들도 “사실관계는 인정하지만, 과연 이것이 공직선거법 위반죄나 직권남용죄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항변했다. 이 사건은 법리 판단이 쉽지 않아 재판이 오래 걸리고 있다. 직권남용죄에 대한 범위를 어디로 봐야 할지 헌법재판소 판단도 기다리고 있다. 과거 관행이었다고 해도 경찰이 청와대의 정세 분석에 관여하고 관련 문건을 생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무원 문화에서 부적절한 윗선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실행한 것을 범죄로까지 봐야 할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검찰은 단호했다. 확실한 범죄로 관련자들은 모조리 구속 수사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기간으로 봤을 때 1년 6개월이 넘게 진행된 박근혜 전 대통령 추가 혐의 수사로 박근혜 정부 국정원과 경찰 고위 인사들은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국정원과 경찰 인사들을 장기간 수사한 두 사건은 사실 뿌리가 같다. 국정농단 후속 수사를 하던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렸던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등이 국정원으로부터 매달 돈을 상납 받은 정황을 포착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국정원 돈을 받으라고 지시한 것으로 확인된다. 청와대는 국정원 돈으로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를 한 사실 등도 드러난다. 문고리 3인방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로 국정원 돈을 마음대로 갖다 쓴 것에서 시작된 수사가 범위를 확대해 나간 것이다. 국정원에서 돈을 준 사람 중에 정권 실세였던 최경환 전 의원도 드러나게 된다. 돈의 용처 중 하나였던 여론조사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경찰 고위직들이 연루된 단서도 파악한다. 검찰은 국정원이 뇌물을 줬다고 법리를 적용했고, 경찰은 청와대의 지시에 따르면서 선거법을 위반하고 직권남용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박근혜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인사들은 모두 국정농단 연루자일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할 때 시작됐다. 새누리당 공천 개입 의혹과 국정원 특활비 사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추가 수사로 인식됐고, 권력기관 간의 역학관계는 주목받지 못했다. 한편에서는 검찰과 국정원, 경찰 간 갈등의 역사를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국정원과 경찰은 권력자의 수족과 같은 통치기관으로 인식된다. 검찰은 다소 성격이 다르다. 제도의 기원 자체도 그렇다. 검찰은 국정원과 경찰의 수사를 통제하고 지휘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제도 상 충돌을 일으키기 쉽다. 국정원은 앞서 말했던 대로 2013년 댓글 수사 당시 검찰과 큰 갈등을 빚었다. 윤석열 지검장은 댓글 사건 수사팀장이었다.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 간첩조작 사건에서도 국정원과 검찰은 신경전을 벌였다. 서로의 책임을 줄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부터 정보기관과 검찰은 갈등이 있었고, 민주화 이후 검찰이 힘을 키우면서 정보기관의 견제 의식도 커졌다. 검찰과 경찰도 자주 충돌한 사례가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로 수십 년 간 검찰과 경찰의 고위직들이 입씨름을 벌였다. 수사권 조정 문제는 양 측의 기싸움으로 시작돼 어정쩡한 봉합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검찰은 전직 경찰청장을 자주 수사하기도 했다. 1990년 경찰청이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퇴직한 21명의 경찰청장 중 11명이 검찰 수사를 받았다. 경찰도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김광준 검사 등 다수의 검사를 수사한 적이 있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최측근 윤대진 검사의 형,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을 수사한 것도 검찰을 겨눈 수사라는 해석이 많았다.     

 앞선 사례를 봤을 때 적폐청산 국면이 아니었다면 전직 경찰청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에 대해 경찰의 조직적 저항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체제에서 서울중앙지검은 누구도 수사해 보지 못했던 전직 대법원장을 건드렸고, 예전처럼 라이벌 권력기관의 전직 수장들도 엄벌에 처했다. 국정농단 사건을 거치면서 다른 기관들은 큰 상처를 받았고, 검찰은 별 저항 없이 과거 견제 관계에 있던 기관들을 수사하면서 최고의 권력기관으로 거듭난다. 이것은 정권 차원에서 검찰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리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검찰 수사에 적극 개입하는 정권이었으면 정권의 수족인 정보기관과 경찰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일에 제동을 걸었을 가능성이 있다. 박근혜 정부는 댓글 수사 당시 검찰이 국정원을 흔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 수사를 그대로 지켜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적폐청산 수사에서 거의 예외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전직 검사들이 수사를 받았고 구속됐지만, 청와대나 국정원에 있던 검사들의 일탈로 보였다. 다른 기관들과 달리 전직 검찰총장 등이 수사를 받는 사건 등은 일어나지 않았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정도가 적폐청산으로 다시 수사가 되지만, 다른 기관에 비하면 솜방망이에 가까웠다. 또 이 사건은 나중에 문재인 정부에 역공을 가하는 중요한 소재가 된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2008년 PD수첩 사건 등에 부당한 수사 압력 등이 있었다고 판단했지만, 이것이 수사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검찰이 권력의 뜻에 따라 죄가 안 되는 행위에 대해 억지로 수사한 것이 경찰이 청와대 지시에 따라 부적절한 정치 정보보고를 한 것보다 가벼운 행위로 볼 수 없다. 문재인 정부 살아있는 권력 수사에 자주 등장했던 직권남용은 억지 수사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직권남용은 자신의 직무상 권한을 이용해 하급자 등에게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담당 검사가 범죄로 수사하기 힘들다는 사건을 검사장이나 검찰총장이 수사하라고 한다면 이보다 더 직권남용이 완벽하게 적용되는 사례는 찾기 힘들 것이다. 더구나 수사 행위는 한 사람의 사회적·정치적 생명을 완전히 끊고 근대 인권의 핵심인 자유권을 구속할 수 있다. 잘못 사용된다면 그 피해를 온전히 회복하기도 매우 어렵다. 수사권만큼 남용 없이 사용돼야 하는 권한은 없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청와대는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기소를 검찰에 압박한 적이 있다. 이 사건은 앞으로 서술할 사법농단 사건에도 중요한 대목으로 등장한다. 공기업들이 말을 듣지 않자 검찰에서 자원비리 수사 등이 시작됐다. 모두 제대로 따졌다면 부적절한 면이 많았을 것이고, 문재인 정부 공직자에 검찰이 적용한 기준이라면 과거 검찰의 주요 인사들도 직권남용으로 걸릴 수 있었다. 하지만 검찰이 박근혜 정부의 적폐청산을 주역이었고, 국정농단을 엄벌한 사람들이 검찰의 중심이 됐기 때문에 검찰을 문제로 지적하는 주장은 잘 없었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이 청산이란 말을 거의 잊어갈 때도 검찰은 다른 기관의 적폐를 청산했고, 질주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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