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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환 Sep 13. 2021

#4. 우병우(2017년 11월)

 앞서 검찰은 적폐청산 과정에서 예외가 됐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 경찰, 군에서 과거 청산 작업이 이뤄졌고, 검찰은 관련자들에게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댔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세청장을 지냈던 이현동 씨가 구속되기도 했다. 보수 정권에서 권력을 누렸던 인사들은 심각한 후폭풍을 피하지 못했다.

 검찰 출신 인사들 중에서도 검찰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한 사람이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국정원 고위직을 지낸 전직 검사들이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 등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고 변창훈 검사 등 국정원 파견 검사들도 수사를 받았다.     

 국정농단 특검 시절 두 차례 구속영장이 청구됐었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윤석열 체제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레이더망에 다시 한 번 포착된다. 우 전 수석이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일할 때 아끼던 추명호 전 국정원 국장이 연결고리였다. 검찰은 2017년 10월 추 전 국장을 긴급체포한다.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문건 등을 작성한 혐의였다. 국정원법 상 정치 관여 금지 조항을 위반했고, 직권남용 혐의를 받았다. 앞서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는 추 전 국장이 우 전 수석에게 동향 보고를 한 사실을 확인했다. 위원회는 우 전 수석이 국정원 2차장으로 추 전 국장을 추천할 정도로 두 사람이 밀접한 관계였다고 밝혔다.

 검찰은 추명호 전 국장을 수사하면서 우병우 전 수석의 새로운 혐의를 포착했다. 우 전 수석이 국정원에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에 대한 뒷조사를 지시하고, 사찰 동향을 받은 보고서를 받았다는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였다. 앞서 국정농단 특검 시절 두 차례 구속영장이 기각된 적이 있던 우 전 수석은 다시 검찰청 앞 포토라인에 섰다. 법원은 세 번째 청구된 구속영장은 발부했다. 권순호 서울중앙지법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혐의 사실이 소명되고 특별감찰관 사찰 관련 혐의에 관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발부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우병우 전 수석에 앞서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최 전 차장은 우 전 수석과 서울대 법대 84학번 동기로 친구 사이로 알려져 있다. 언론에서 대표적인 ‘우병우 사단’이라고 지목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서울중앙지검 3차장을 거쳐 국정원 국내 정보를 담당하는 2차장이 됐다. 우 전 수석은 당초 국정원 2차장으로 추 전 국장을 밀었지만, 이병기 당시 국정원장의 반대로 차선책으로 선택된 것이 최 전 차장이었다. 검찰은 추명호 전 국장이 최윤수 전 차장을 거쳐 우병우 전 수석에게 비선 보고를 한 것으로 봤다. 최 전 차장은 국정원에 온 이후 우 전 수석에게 비선 보고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의 영장 실질 심사는 결과는 기각이었다. 혐의 소명이 충분히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윤수 전 차장에 대한 영장 기각으로 검찰 수사 차질 우려도 빚어졌지만, 우병우 전 수석은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했다. 여론과 언론은 환호했다. 우 전 수석은 당시 국정농단과 관련된 인물로 구속되지 않은 ‘최후의 1인’으로 불렸고, 법률 지식을 이용해 이리저리 빠져나간다는 의미로 ‘법꾸라지’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처가 땅 넥슨 매각 의혹 사건 때부터 ‘황제 조사’논란을 빚었고, 특검 조사 당시 기자를 노려봐 ‘국민 밉상’이 되기도 했다. 이런 우 전 수석을 윤석열 지검장이 이끄는 서울중앙지검장이 세 번째 만에 구속한 것이다.   

  

 우병우 전 수석은 특검에서 수사했던 국정농단 방조 혐의와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한 불법 사찰 및 비선 보고 혐의로 1심에 2개의 재판을 받게 된다. 먼저 2018년 8월 국정농단 방조 혐의 1심 재판에서 우 전 수석은 징역 2년 6월을 선고 받는다. 이 재판에서 혐의는 매우 방대했다. 문체부 국·과장 및 감사담당관 인사 조치 강요, K스포츠재단 현장 실태 점검 부당 지시, 공정거래위원회에 CJ E&M 검찰 고발 강요,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조사 방해, 안종범 전 경제수석 감찰 미실시 등으로 인한 국정농단 방조, 국정감사 불출석 등이었다. 직권남용과 함께 직무유기도 있었다. 직무유기는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 한 것으로 이를 범죄를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 중에서 공정위에 대한 강요, 특별감찰관 조사 방해, 국정농단 방조 등이 1심 유죄로 인정됐다. 4개월 뒤 열린 불법사찰 혐의 재판에서는 징역 1년 6월이 선고된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에 대한 불법 사찰을 지시하고, 국정원으로부터 보고서를 받은 혐의가 인정됐다.

 2심으로 가면서 두 재판은 병합된다. 재판은 상당한 시일이 걸렸고, 두 번째 1심 판결이 있은 지 약 2년 만인 2021년 1월에야 2심 판결이 난다. 그 사이 우병우 전 수석은 구치소에서 석방된다. 두 1심 결과를 합치면 징역 4년이었지만, 2심에서 징역 1년으로 감형된다. 특검이 수사한 국정농단 방조 혐의는 모두 무죄가 난다. 이석수 특별감찰관 불법 사찰 부분 등만 인정돼 징역 1년으로 감형된다. 검찰은 2심 판결을 앞두고 징역 13년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기소된 혐의 중 극히 일부분만 유죄로 인정했다. 우 전 수석은 재판 내내 최순실 씨를 알지 못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검찰이 자신의 청와대 시절 업무를 전부 훑어 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 한 것은 직권남용으로 기소했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는 2심 판결 후 대법원에서 무죄를 위해 싸우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국정농단 특검팀과 그 팀원이 주축이 됐던 서울중앙지검은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해 국민 여론을 충실히 따른 수사를 했다. 여론은 국민 밉상이자 법꾸라지인 우 전 수석을 감옥으로 보내라고 했다. 특검은 두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 당했다. 특검에서 수사한 부분은 2심에서 모두 무죄가 났다. 수사 근거가 약했다고 볼 수 있다.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난다면 범죄보다 사람을 봤다는 비판이 충분히 가능하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체제가 출범한 이후 다시 수사를 했고, 세 번째 만에 구속영장을 받아냈다. 이 부분에 대해 2심 법원은 유죄를 인정했다. 검찰은 세 번째 영장 청구 전에는 공범들부터 면밀하게 수사하면서 차근 차근 단계를 밟아나갔다. 국정원 적페청산 기구였던 개혁위원회 도움도 받았다. 특검과 검찰의 수사는 우 전 수석 재직 시절 거의 모든 행위가 대상이 됐고, 조금이라도 법에 저촉될 여지가 있는 행위는 모두 기소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병우 전 수석은 잘 나가던 특수통이던 시절 정치적인 수사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표적인 게 대검 중수1과장 시절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다. 과거 특수통의 유전자를 그대로 이어받은 검사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의 인연도 깊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인사에서 우 전 수석은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이 됐고, 윤 전 총장은 그 아래 범죄정보2담당관이었다. 검사로는 4년 선·후배 사이로 우 전 수석과 윤 전 총장은 특수통의 적자들이었다. 우 전 수석은 특수통 검사 시절부터 고압적 태도로 말이 많았다. 그를 최고의 검사로 여기는 상급자도 있었고, 건방진 검사라고 생각하던 사람도 있었다. 실력은 있지만 태도의 문제가 많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다. 언론과의 관계도 매끄럽지 않았다. 자신의 수사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을 하는 기자들을 우 전 수석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삶의 궤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우 전 수석은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하고, 청와대로 들어가 부활하는 듯했지만 국민 밉상이 됐다.     


 특수통으로서 누구보다 많은 칼을 휘둘렀던 우병우 전 수석은 이제는 완전히 반대 입장이 됐다. 인간적으로 우병우 전 수석을 좋아하기는 힘들지만, 그가 받은 수사는 한 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검찰이 징역 13년에 처해 된다고 생각했던 광범위한 혐의는 2심에서 대부분 무죄로 판단됐다. 보통 검찰의 구형이 법원의 선고보다 형이 세긴 하지만, 이 재판은 차이가 매우 컸다. 적폐수사에도 자주 등장했던 직권남용 혐의가 주를 이뤘고, 특이하게 우 전 수석에게는 직무유기 혐의까지 더해졌다. 돈 관계는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것이 없었다. 수사만 1년 가까이 걸렸고, 구속 이후 2심 재판을 받은 데까지 2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우병우 전 수석의 공범으로 지목된 최윤수 전 차장과 추명호 전 국장의 재판도 장기화되고 있다. 최 전 차장은 1심에서 우 전 수석과의 공모 관계가 인정되지 않았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실행 관련 혐의만 유죄를 인정 받아 집행유예형을 받았다. 추 전 국장은 이석수 특별감찰관 사찰 등이 유죄가 됐고, 정치인과 연예인 정치공작 혐의는 무죄를 받아 1심에서 징역 2년이 선고됐다. 이들에 대한 2심은 2년 넘게 진행되고 있다.

 우병우 전 수석과 공범으로 지목된 인사들의 재판이 길게 이어지는 것은 그만큼 혐의가 방대하고 다툴 게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죄를 받은 부분이 더 많다. 검찰은 보이는 오물을 청소하는 하는 청소부의 역할을 해야 한다. 없는 오물을 만드려내 청소하려고 하면 안 된다. 검찰 수사에서 계속 지적이 나왔던 부분이다. 딱 부러지는 혐의 1~2개로 승부를 보기보다는 종합선물세트 식으로 기소를 한다. 그러다 보니 수사와 재판의 장기화는 피할 수 없다. 보통 이러한 수사는 타깃을 먼저 정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우병우 전 수석도 검사 시절을 이러한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은 사람이다. 그가 검찰한테 똑같은 대우를 받아도 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가 되는 수사 방식이 잔존하는 것은 밉상, 적폐의 처벌보다 더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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