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환 Sep 13. 2021

#6. 삼성바이오로직스(2018년 12월)

 문재인 정부에서 대표적인 검찰의 재벌 비리 수사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다. 특수부 검사들에게 재벌 수사는 정치인 수사와 함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칼잡이’를 자처하는 검사들은 모두 재벌 비리를 한 번씩은 건드리고 싶어 한다. 유수의 대기업들은 대부분 검찰 수사를 받은 적이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삼성이 주요 타깃이 됐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이미 국정농단 특검 시절 삼성을 수사한 적이 있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대부분의 재벌들이 연루됐지만, 역시 핵심은 삼성이었다. 삼성은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승마용 말을 사줬다. 단순히 최순실이 부정축재 목적으로 만든 재단에 돈을 납부한 다른 기업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돼 구속된 유일한 재벌 총수였고, 긴 재판 끝에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는다.     

 특검 파견 당시 삼성을 수사했다 정권이 바뀐 뒤 서울중앙지검으로 이동한 윤석열 지검장과 한동훈 3차장은 다시 삼성 관련 수사를 한다. 시작은 2018년 11월 증권선물위원회의 고발이었다. 증권선물위원회는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가 고의 분식회계를 한 혐의가 있다며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그룹 승계와 연관된 민감한 사안이었다. 검찰은 2018년 12월에 대규모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증선위의 고발로 시작된 사건이었지만, 수사는 생각보다 속도가 나지 않았다. 수사 초기 검찰은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30대 대리를 포함해 실무자 8명을 증거인멸 혐의로만 구속했다. 매우 이례적이다. 증거인멸 혐의는 구속된 삼바 직원 중 회계 조작 의혹에 직접 관련됐다고 볼 만한 인물은 없었다. 원하는 진술을 얻어내기 위해 하급 실무자부터 모조리 구속했다는 과잉수사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경우 보통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론을 등에 업은 이 수사에서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영장을 대부분 내줬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윤석열 지검장 시절 서울중앙지검은 증거인멸에 유독 민감했다. 어떤 수사든 초기에는 증거인멸이 논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실무자들을 구속한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그들의 행위가 언론에 대대적으로 공개된 것도 일반적인 일이라고는 할 수가 없다. 삼바 직원들이 공장 바닥을 뜯어내 컴퓨터 등 집기를 숨겼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여론은 관련 보도가 처음 나왔을 때 모두 삼성의 엽기적인 증거인멸 행위에 분노하는 것으로 보였다.     

 수사 초기 증거인멸 행위에 대해 실무자 급부터 모조리 구속시켰지만, 수사 결과 회계 조작 의혹과 관련해 사장급 이상 삼성 고위 인사 중 검찰에 의해 구속된 사람은 1명도 없었다. 검찰은 수사를 시작한 지 5개월여 지난 2019년 5월 김태한 삼바 사장에게 분식회계 혐의 등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영장이 기각됐다. 전문경영인으로는 최고위급인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 사장은 2019년 6월 검찰에 소환돼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지만, 예상과 달리 구속영장이 청구되지 않았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외부에 정확히 알려진 게 없으나 구속영장을 청구할 정도로 범죄 혐의가 완성되지 못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검찰은 2019년 7월에 다시 김태한 사장 등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지만, 3명 모두 기각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한꺼번에 여러 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1명이라도 반드시 영장을 받아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박영수 특검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한 차례 기각되자 보완 수사 후 영장을 재청구했다. 재청구 시에는 정유라에게 말을 지원한 박상진 삼성전자도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사법농단 수사에서는 양승태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박병대 전 대법관도 함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도록 했다. 앞서 봤던 국가정보원, 경찰 관련 사건에서도 전직 국정원장 3명과 전직 경찰청장 2명의 구속영장이 같은 날 청구된다. 법원도 모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기는 쉽지 않다. 한 사람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것과 2~3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하는 것은 부담의 크기가 다르다. 언론에 ‘모조리 기각’ 등의 제목이 뽑혀 나오면 비판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법원은 여러 명 중 한 명이라도 구속시켜야 한다는 압박을 알게 모르게 받을 수 있고, 그러다 보면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높은 사람의 영장을 내주는 경우가 많다. 검찰의 입장에서도 여러 명의 구속영장을 함께 청구하는 것은 마지막 수단일 수 있다. 이런 경우 영장이 전부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앞서 했던 얘기를 뒤집으면 법원 입장에서는 1명을 구속시키면 다른 사람의 영장을 홀가분하게 기각할 수 있는 것이다. 검찰은 구속을 확신하면 1명씩 불러 차례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겠지만, 전원 구속을 자신할 수 없을 경우 여러 명 동시 청구라는 카드를 빼내드는 경우가 많다. 윤석열 지검장 시절 서울중앙지검은 이러한 전통적인 특수통의 수사기법을 자주 사용했다.     

 검찰의 승부수가 통하지 않으면서 분식회계 사건의 정점으로 취급받던 최고위급 전문경영인들은 불구속됐고, 대리급부터 시작하는 실무자들은 구속되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해 버렸다. 과거 특수통 검사들은 범죄에서 가장 큰 책임자만 건드린다는 인식이 있었다. 범죄를 주도하고 지시한 사람에게 총체적 책임을 묻고 지시에 의해 단순 가담한 사람들은 검찰의 재량에 의해 재판에 부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중앙지검이 시작한 굵직한 수사는 그동안 있었던 불문율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지시에 의해 단순 가담한 실무자들도 증거인멸 행위로 구속을 피하지 못했다. 삼바 증거인멸로 구속된 8명의 구체적인 속사정은 알지 못하지만, 모두 생업에 종사하면서 가정의 주 수입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능성이 높다. 구속됐던 사람들은 증거인멸을 계획하거나 지시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 8명을 모조리 구속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이냐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특수통 엘리트 검사의 눈에 그렇지 않을 수 있겠지만, 부당한 지시를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 치고는 너무 가혹하다. 이들은 현재 대부분 형을 마치고 일터로 복귀했겠지만, 유죄를 인정받아 전과자의 꼬리를 떼지 못했을 것이다.     


 약 6개월 간의 수사, 정현호 사장의 소환, 김태한 사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으로 끝날 줄 알았던 삼바 분식회계 사건은 2라운드로 넘어가게 된다. 삼바 분식회계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이던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2019년 8월쯤부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수사하고, 삼성 수사는 특수4부가 이어간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는 2019년 9월 23일 삼성물산 등 삼성그룹 계열사와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KCC를 압수수색한다. 삼바 분식 회계 의혹뿐 아니라 본격적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작업 비리를 보겠다는 것이었다. 길이 잘 안 뚫리자 새로운 방향을 만든 것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승계가 유리하도록 합병 비율 조장하는 등의 범죄를 조직적으로 저질렀다는 게 검찰이 가진 의심이었다. 2라운드 수사도 속도가 쉽게 나지는 않았다. 삼성물산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있은지 약 1년이 지난 2020년 9월 검찰은 이 부회장 등 11명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수사를 끝낸다. 검찰은 2020년 5월 이와 관련해 이 부회장을 두 차례 소환 조사하고, 6월에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영장을 기각한다. 검찰은 이 부회장과 함께 최지성 부회장, 김종중 사장에게 구속영장을 함께 청구했다. 검찰의 동시 구속영장 청구 카드가 다시 쓰였지만, 무위에 그쳤다. 법원은 이번에는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한 것이다. 원정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며 구속 필요성에 대한 소명이 없다고 봤다. 수사가 지나치게 장기화되면서 법리적으로도 구속영장 발부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았고, 여론의 지지도 등에 업지 못했다.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이 부회장 기소 전 검찰에 불기소를 권고하기도 했다. 검찰로서는 굴욕적인 결과였다. 향후 재판에서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무죄가 최종 선고될 경우 이 수사는 앞으로 전형적으로 잘못된 수사, 환부만 도려낸 명의의 수술이 아닌 배부터 갈라놓은 돌팔이의 수술로 기록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삼성은 이 수사에서 줄곧 범죄 혐의를 부정해 왔다. 전문가들도 이 부회장이 승계 작업을 용이하게 하려고 합병 비율을 조작하는 등의 행위를 했는지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다만 전문가들이 포함된 수사심의위는 불기소 권고를 내린 바 있다. 평가해야 할 것은 검찰의 암수술식 수사다. 이 수사는 수년에 걸쳐 지적된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검찰 수사는 충분한 내사를 통해 신속하고 빠르게 환부만 도려내는 식으로 해야 한다. 형사소송법이 의심할 여지없이 범죄의 증명을 하라고 검찰에게 의무를 부과한 것은 확실한 증명이 가능한 수사만 하라는 취지다. 의심이 든다고 섣부르게 수사를 시작한다면 심각한 인권 침해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 수사는 일단 2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수사 초반에는 증거인멸 혐의만 부각되면서 핵심에 다가가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삼바 수사가 막히니까 합병 조작 비율 등 다른 쪽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삼성을 건드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검찰 입장에서는 집요한 수사 방해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을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증거를 수집한 뒤 수사를 해야 하는 게 검찰의 의무다. 검찰은 손가락질 받는 대상을 막 건드리는 곳은 아니다. 법에 저촉되는 범죄 행위를 한 집단만 수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수사가 일단 시작되면 신속하게 끝내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이후 구속과 집행유예 석방, 파기환송 후 재구속 등의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불구속 기소된 승계 작업 관련 재판을 계속 받아야 한다. 불구속 재판이기 때문에 이 사건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예상하기 쉽지 않다. 사건의 쟁점이 워낙 많고 전문적인 내용도 많아 최소 2~3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존경과 함께 가장 많은 비판도 받고 있다. 삼성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떠나서 손꼽히는 글로벌 기업이 이렇게 장기간 수사기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분명 비정상적인 일이다.     


 몇 년 간 검찰은 재벌 수사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대기업들이 다수 연루됐지만, 그것은 검찰이나 특검이 인지한 수사가 아니었다. 언론의 보도로 밝혀진 사실이었다. 국정농단이 드러나기 전 2016년 검찰은 재계 5위인 롯데그룹 수사를 대대적으로 했지만,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한 신동빈 회장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132일 간 17곳을 압수수색하고, 검사만 20여 명을 투입했지만 사건이 용두사미로 끝나고 만 것이다. 신 회장은 법원에서도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의 문제점을 지적한 ‘도쿄지검 특수부의 붕괴’에서는 일본 검찰의 수사력 저하를 지적하는 일본 경시청 관계자의 발언이 나온다. 경시청 관계자는 도쿄지검 특수부에 대해 “더 이상 프로 수사 집단이 아니다. 제공받은 정보의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인재가 없어 배후가 있는 정보를 덥석 물어 안이하게 사건을 짜 맞추고만 있다”고 지적한다. 실력을 갖추지 못하고 권력에 가까운 검사들이 특수부 요직을 차지하면서 수사력 저하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검찰도 몇 년 간 심각한 수사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롯데 수사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 시절 특수부가 한 자원 외교 비리 관련 공기업 수사도 대부분 무죄가 났다. 검찰개혁 조치 후 수사권을 이양받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국가수사본부에 대한 수사력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이는 검찰 스스로도 돌아봐야 할 문제다. 삼성 승계 작업과 관련된 재판 결과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최고의 수사력을 갖췄다는 윤석열 사단이 한 수사도 지금까지는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기 전 이미 특검 수사로 구속됐던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는 정말 큰 악연이다. 윤 전 총장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인사 갈등을 빚던 2020년 1월 이 수사를 지휘해 온 이복현 서울중앙지검 경제형사부장만은 지켰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이 사건을 챙겼다. 윤 전 총장과 이 부회장은 2017년 초 특검 수사가 시작된 이후 악연을 이어오고 있다. 특검 수사 전에도 윤 전 총장은 삼성을 수사한 적이 있다. 2007년 삼성그룹 비자금 및 로비 의혹 사건 특별수사팀에도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당시 삼성그룹 전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로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검찰 수사는 정치권이 특검에 합의하면서 짧은 기간에 그쳤지만, 이때까지 포함한다면 윤 전 총장과 삼성은 오래되고도 질긴 악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전 07화 #5. 사법농단(2018년 6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